「奉局長」的三分錢專欄時間! 局長的文筆水準或許不值「三分錢」…但還是解開主日話語後採用世上的語言撰寫成專文囉。
한 청년이 자전거로 시골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방문 판매를 통해 학비를 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물건은 전혀 팔리지 않았고, 그 날 따라 유난히 배고픔까지...
마침 눈에 띄는 한 초라한 집으로 찾아가 밥이라도 얻어 먹을 요량으로 문을 두드렸습니다.
예상과 달리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문을 여는 바람에 '밥 달라'는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 해, 그저 '물 한 잔만 주세요'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청년이 몹시 배고파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큰 잔에다 우유를 가득 담아 내어 옵니다.
청년은 단번에 우유를 다 마셔버리고 그녀에게 얼마를 드려야 할지 물으니 “안 주셔도 돼요. 저희 어머니께서는, 늘 저에게 좋은 일을 하거든, 절대 댓가를 바라지 말라고 하셨어요.”
청년의 눈에 그녀는 천사와 다를 바 없었을 것이고 그 모습이 마음에 새겨지듯 또렷하게 기억에 남았을 것입니다.
이 후 청년은 무사히 공부를 잘 마치고 마침내 산부인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십여년이 흘렀을까요?
우유 한 잔의 은인이었던 여인이 큰 병을 얻어, 치료를 목적으로 도심에 있는 이 청년의 병원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녀를 단박에 알아 본 청년은 모든 힘을 다 해 그녀를 살려내겠다 결심하였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드디어 그녀를 치료 하게 됩니다.
막상 치료를 끝낸 그녀는 완치에 대한 기쁨보다 병원비 걱정이 앞 섰습니다.
그녀가 수심에 차 병원의 청구서 봉투을 열어 보자 그 안에는 청구서가 아닌 '메모'가 들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유 한 잔으로 모두 지불 되었습니다.'
이 실화의 청년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병원 중 하나인 미국의 존스홉킨스 병원 공동설립자 하워드 켈리(Howard A.Kelly)입니다.
텍스트(Text)와 컨텍스트(Context)
텍스트는 말 그대로 문자, 글귀입니다. 하지만 텍스트만으로는 충분히 그 의미가 전달 되지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점에서 '컨텍스트'는 맥락, 배경 등을 뜻하는 것으로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장치라 볼 수 있습니다.
상기 실화에서 시골 집 여인은 청년의 '물 한 잔'이라는 텍스트를 들었지만 그 청년의 표정, 행색 등을 통해 '배 고프다'는 컨텍스트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저 '텍스트' 대로 '물 한 잔' 내어 줬다면, 백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해 지는 감동적인 스토리는 우리에게 남아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의문(儀文,Text)은 죽이는 것이요, 살리는 것은 영이니...'
성경도 이 '텍스트'의 한계를 명확히 말씀합니다.
오병이어의 표적을 '텍스트'로만 따지면 정말 비현실적인 마법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소경’이 되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예수님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텍스트'로 또 다른 '표적'을 구했지만, 예수께서는 '요나의 표적'을 들어 켄텍스트를 제시하셨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반대하니, 예수님은 ‘직접적인 말(텍스트)’로 하지 않고, '비유'와 같은 '컨텍스트'를 들어 말씀하며 깨달을 자 들만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비단 이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혼란은 신약시대에 국한 된 이야기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 시대도 엄연히 하늘의 말씀이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입고 전해 질 것이며, 말씀을 '텍스트' 차원에서만 이해하고 육적으로, 자기 주관으로 생각하는 자들을 보시고, 하늘은 안타깝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컨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 듣고, 근본의 심정을 깨달아 제대로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물 한 잔' 말씀에 우유 가득 내어 올 수 있는, 말 통하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하늘은 기대하고 계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