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奉局長」的三分錢專欄時間! 局長的文筆水準或許不值「三分錢」…但還是解開主日話語後採用世上的語言撰寫成專文囉。
성경에 나오는 '달란트'(Talent) 이를 요즘 화폐단위로 환산한다면 어느 정도일까요?
달란트 비유에 대한 새로운 시각
달란트는 라틴어 ‘탈렌툼’(talentum)'에서 유래한 말로 원래는 무게를 재는 단위였다고 합니다.
시대마다 그 기준이 달랐지만 1달란트는 최소 한 사람의 연봉(수 천만원~수억원 대)을 거뜬히 넘어서는 가치를 가진 것은 분명합니다.
달란트 비유에서는 이 엄청난 금액을 주인은 종에게 아무런 조건도 없이 그저 '맡기고' 언제 오마 기한도 없이 길을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련원장님 말씀대로 이는 '거저 준 것'이라는 말씀이 사실에 가깝겠습니다.
여하튼 타지에서 돌아 온 주인은 종들의 행위를 보고 '착하고 충성 된 자'들이라는 칭찬을 했습니다.
이 '칭찬'은 단순히 돈을 남겨 유익을 끼쳤기에 했다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정명석 목사님께서는 칭찬의 근본 된 이유를 '떼 먹지 않아서였다'고 하셨습니다.
'거저 준 것'이나 다름 없었는데 굳이 떼 먹지 않고 되돌려 준 것(어떤 이는 두 배로 더 키워서)에 칭찬을 했다는 말씀은 주인의 본심(종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믿어주었다)을 정확히 파악한 말씀이라고 생각 됩니다.
어떤 이야기든 주인공은 있기 마련, 이 달란트 비유의 스폿라이트(Spotlight)는 '한 달란트' 맡긴 자에게 집중 됩니다.
'거저 준 것과 다름 없는' 주인의 본심을 전혀 이해 못 하고 '주인은 굳은 사람'이라 오해했던 한 달란트 받은 자.
주인이 그 사람에 대해 화를 낸 것은 유익을 남기지 않았음이라기 보다 자신의 그들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배려를 몰라줬기에 그러했다는 것이 이제는 더욱 설득력 있습니다.
그래서 정명석 목사께서 '떼 먹지 않아서 칭찬했다'는 말씀은 정말 참신한 해석입니다.
이에 더 참신한 말씀은...
'어렵고 힘든 때에 한 달란트를 상실하지 않고 남긴 것이, 자기 하나라도 제대로 챙겨 잃지 않았으니, 사실은 이 역시 착하고 충성 된 사람'이라는 평가였습니다.
성경에 나온 '주인'의 심정을 궤뚫은 것과 같은 해석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기술혁명과 달란트 비유
과거에는 '착하고 충성 된' 척도가 '생산성'과 깊이 관련 되었을 것입니다.
같은 시간 1개를 만드는 사람보다 2개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낫고 다섯개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더 착하고 충성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술혁명'의 시대를 맞아 이러한 개념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우주선을 달나라로 보내기 위해 한 방을 꽉 채워 총동원 되었던 수퍼 컴퓨터들보다 현재 내가 아무렇게나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성능이 더 좋다고 합니다.
이 처럼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 했던 정도로 생산성이 극대화 되었습니다.
이러한 물질적 생산성 향상의 이면에는 짙은 그림자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당장 앞에 든 예와 같이 우주선을 달나라에도 보낼 수 있는 도구(기술)를 가지고 그저 친구와 채팅이나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괴리'
그리고 핀테크를 통해 은행이나 화폐가 갖던 권위와 개념들은 흐려지고, 자율주행 기술로 자동차는 '사람이 운전한다'는 상식 같은 것들이 위협 받는 때를 맞아
기계로부터 '일자리를 뺏길 위협'에서 시작하여 종래 자기가 갖고 있던 관념, 권위 등 인간의 인식과 의식은 어떻게 정리 되어야 할 지 모를, 그래서 '공포'스럽기까지 한 변화를 맨 몸으로 맞고 있습니다.
이점에서 한 달란트 남긴 자 마저 칭찬하신 말씀은 생산성을 추구하던 시대, 결과만을 평가하던 시대에 대한 종언을 선포 하신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리적 양적 생산성의 '결과'가 아닌 주관적이고 질적인 '과정'이 중요하다는것.
그리고 무엇보다 '너' 라는 존재, 한 생명을 유지한 것이야말로 진정 의미있다는 것은 기술혁명의 소용돌이 속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인간들에 대한 따뜻한 메세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