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分錢專欄 by 奉局長

「奉局長」的三分錢專欄時間! 局長的文筆水準或許不值「三分錢」…但還是解開主日話語後採用世上的語言撰寫成專文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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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처럼 온전하라구요?

각 시대마다 보낸자들은 그 사명을 감당하기위해 곧 보낸 자이기 위해 범인(凡人)들은 이해하기 힘들 지경의 몸부림을 쳤습니다.


이로써 하나님 또한 하나님이시기위해 인간들은 상상조차 불가한 차원의 '신부림(?)'을 치고 계실것이라 감히 '유추'해 봅니다.

'온전하라'는 말씀은 어떤 이상적인 '상태'를 정의하고, 그 "상태'에 '도달해서 유지'하라는 '정적'인 개념이 아닌 것 같습니다.오히려 온전하기 위해 몸부림 치는 '과정'이며 '동적'인 개념에 가까울 것 입니다.

예전에는 현 상태를 유지하기,지키기 위해(Status-quo) 성을 쌓았습니다. 성을 높이 쌓으려는 것은 그 만큼 지킬것이 많다는것입니다. 하지만 축성은 곧 쇠퇴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천하를 통일했던 진시황의 만리장성이 그러했고 에게해를 제패했던 아테네의 성이 그러했습니다.

반면, 대 로마제국은(Pax Romana)는 거침 없이 육로를 내는 것에서 시작 되었고,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Pax Britainica)은 해로를 개척한것에서,  팍스아메리카나(Pax Americana)는 전 세계의 제공권, 항로를 확보함에서 출발 했습니다. 제국은 축성이 아닌 길을 찾고 내는것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교회가 커진것은 분명 축복입니다.단지 높아진 교회벽이 모습을 달리한 이 시대 '성벽'이 될까 두렵습니다.

성경에서 '이제 그저 유지하고 지키라'는 말씀을 읽어 본 기억이 없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와 집에서)'떠나라' 셨고,

(31개 족속을 향해)'진군'할것을, 

(증인으로서) 땅 끝까지 이르도록 '길 나설' 것을  명하셨습니다.


갈데아 우르에, 신광야 적당한 곳에 축성을 지시 않으셨고, 신약의 교회안에서 증인 되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 안에 '머물러 앉아있기'를 말씀 않으시고 '길 위에 서 있기'를 강조하셨습니다.

'온전하라' 말씀이 어떤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은 하나님 차원에서, 보낸자는 그 수준에서, 부족한 자신은 또 자기 수준에서 끝없이 새롭게 변화하고 도전하는 '과정'에 방점을 두고 하신 말씀이라면,
감히 나도 '하나님 처럼 온전해지기'에 도전해 볼 용기가 생깁니다.

그리고, 황금성 시대(Pax Golden castle)서막은 황금성에 머무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성문을 열고 길을 개척하고자 나서는 '온전한 ' 자들에 의해 열리기 시작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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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9/9/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