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奉局長」的三分錢專欄時間! 局長的文筆水準或許不值「三分錢」…但還是解開主日話語後採用世上的語言撰寫成專文囉。
"생육, 번성하여 만물을 주관하라"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3대 의무이자 축복입니다.
황송하기 그지 없는 이 축복에 감히 의문을 달아 봅니다.
"그런데 왜요? 왜 저희에게 이런 큰 축복을?"
다음 장면입니다.
모든 만물을 다스리게 허락하신 신께서 과일 하나 따 먹은 것으로 인해 이를 인간의 '원죄'로 규정하고 에덴에서 쫓아 내셨습니다.
"이건 왜요? 그 과일이 그렇게 중했나요?"
흔히 성서 역사를 종, 아들, 애인/신부 시대로 3분하며 마지막 시대를 성약의 '완성 시대'라고 칭합니다.
각 시대 전환은 신과 인간 사이 '관계성'을 중심으로 구분한것인데 이로써 애초 신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엄청난 축복의 목적(창조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충분히 예측 할 수있을 것이고, 동시에 축복의 땅 에덴에서 쫓겨난 사건 역시 이와 매우 긴밀하게 관련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창조목적, 타락의 사건 그 중심에 바로 '사랑'이 핵심적으로 관련 되어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창조주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우리는 왜 이렇게 못 느낄까요?
센싱(Sensing)이란 '인식'과 '반응'이 결합 되는 하나의 프로세스입니다.
아주 뜨거운 불에 대한 센싱은 피부의 촉감 통한 '인식'과 즉각 손을 떼는 '반응'을 통해 이루어지며, 배고프다는 '인식'으로 먹는 '반응'을 함으로써 부족한 에너지를 보충합니다.
이 '센싱'을 통해 우리는 생존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뜨거운 것을 만질 때, 배 고플 때 우리는 즉각 '센싱'을 하지만 하나님의 존재, 사랑에 대해서는 그리 민감하지 않은 듯 합니다.
이 신에 대한 센싱(God Sensing)의 문제는 '인식'하지 못 함에서 비롯됩니다.
태양은 늘 지구촌 구석구석에 끊임없이 그 빛과 열을 내려 주지만 지구가 등 돌려 그 반은 밤을 맞듯 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 역시 창조 이래 끊임없이 쏟아 부어주시지만
사람들이 등돌려 서 있으니 못 느끼는가 봅니다.
정명석 목사께서 이 신의 '사랑'을 인식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내가 사랑해 봐야 된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자기가 먼저 태양을 향 해 돌아 서 봐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하나님 사랑'을 일생의 모토로 살아 온 그가 전해 주는 참으로 순수하면서도 분명한 진리입니다.
그러고 보니 '사랑'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것이 '진리'인가 봅니다.
"진리 보다 더 큰 것이 사랑이다"
그의 말씀에 확신이 담겨 있습니다.
더욱이 성약 완성의 역사라 불리는 '애인의 시대'
종의 시대에서 주인과 관계성이 끊어져도 그간 먹고 살며 세경은 받았을지 모르고,
아들 시대 아버지와 관계성이 끊어져도 부친 사후, 유산이나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애인의 시대 사랑이 없어진다면 정말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종이나 아들보다 못 한 관계성의 삶을 살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이 뜨거운 것은 얼른 인식하고 급히 손을 뗄 줄 알고, 배 고프면 서둘러 먹을 줄 알면서
하나님에 대한 센싱에는 무뎌져 있다면 불에 데는 것 보다 굶주리는 것 보다 더 치명적인 영혼의 문제에서 허덕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의 사랑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사랑의 반응'을 하는 자야말로 영원한 행복에 참여 할 수 있는,
등불의 기름을 제대로 준비 해 놓은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같은 자 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