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奉局長」的三分錢專欄時間! 局長的文筆水準或許不值「三分錢」…但還是解開主日話語後採用世上的語言撰寫成專文囉。
‘벌(Bee)’ 보다 작은 생물들이 지구에서 차지 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 될까요?
이와 같이 위대한 '혁명' 역시 작고 천천히 이뤄진 일들이 쌓이고 쌓여 나타난 결과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서에도 보면 시대 죄가 쌓이고 쌓였을 때 ‘노아’ 한 사람 통해 방주의 역사가 시작 되었고
애굽 노예 생활을 통한 유대인들의 애환과 간절한
기도가 쌓이고 쌓였을 때 ‘모세’ 한 사람을 통한 출애굽의 위대한 여정이 시작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 천국도 ‘겨자씨(작은 것) 한 알이 자라고 자라(서서히) 새가 깃들만큼 되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보잘 것 없이 작은 것에서부터 너무나 느리게 진행
되어 가는 것이 하늘의 역사라,
시대 마다 ‘소경’이 존재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첫 번째 소경 된 자
첫 번째 소경 된 자는 기존 인식을 못 버리고 자기 중심 신앙에
집착 하여 하늘이 새롭게 연 새 시대, 변화의 도래를 보지 못 합니다.
정명석 목사께서 성경 역사를 보더라도 ‘각 시대 소경 된 자들에게 충분히 알 수 있게, 한 세월을 두고 말씀 주시고 하늘이
역사하시지만, 끝내 외면하고 또 나중에 자기가 부정(否定) 했던 것이 사실 옳은 것으로 드러나더라도
쉽게 회심 하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이 많았음을 말씀 하셨습니다.
너무 작고 느리게 계절이 바뀌어 가니 못 볼 수 있다 하지만, 못 보더라도 온 천지가 이미 새로운 계절이 왔음을 알려 주는 데 피부로라도 왜 못 느끼는지 안타까운 일입니다.
끝내 자기는 ‘여름’에 있다고 문 걸어 잠그고 에어컨을 계속 틀고 있다가 가을 지나고, 겨울이 와 얼어 죽는 것과 같이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 나는 것입니다. 그 지경에 이르니 하나님께서도 그 육성대로 내버려두시어 구시대 주관권 그 범주를 못 벗어나게 되는 것이라 일러 주셨습니다.
두 번째 소경
된 자
다행히 새로운 시대에 눈을 떠 제대로 '전환' 한 자들
중에서도 다시 ‘소경’ 된 자들이 있습니다.
위대한 출애굽의 대 역사를 제 눈으로 보고서도 이 후 막상 가나안
복지를 향 해 가는 노정이 너무 느리니 조급해 하며 악평하고 불만을 한 사람들이 이에 해당 될 것입니다.
또 ‘작은’ 일들로, ‘느리게’ 이뤄가는 역사에서 스스로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작게 느껴지고 그 결과가 더디 이루어진다고 중도에 포기하거나 불만을 내 놓기 시작하는 것도 이에 크게 다를 바 없는 경우입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처음에 웅대한 뜻을 갖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함께 시작한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한 사람, 두 사람 그 일을 그만두기 시작하더니 종내
그 일이 '의미 없다' 여겨지면서 아예 사장 되는 경우를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서는 ‘옛 것을 장사 지낸 것’이라 핑계 할 수 있을까요?
작은 일이 매우 더디게 진행 된다는 겨자씨
비유의 지혜를 깨닫지 못 하니 장차 올 미래를 보지 못 하는 ‘소경’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