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分錢專欄 by 奉局長

「奉局長」的三分錢專欄時間! 局長的文筆水準或許不值「三分錢」…但還是解開主日話語後採用世上的語言撰寫成專文囉。

칼럼_연재칼럼_三分錢專欄

신언서판(身言書判)과 ‘과일’


행실(身)과 생각(言.書.判)의 근원이 되는 '뇌', ‘뇌 과일’



당(唐)대에 정착된 과거(科擧)제도는 그간 철저히 세습에만 의존했던 용인(用人)제도를 과감히 벗어나 능력 있는 인재라면 누구나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말 그대로 등용문(登龍門)의 역할을 제대로 한 제도입니다.


당시를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단순히 ‘시험 성적’으로만 인재를 뽑은 것이 아니라 정성적 항목인 4가지 선발 요소를 따로 제시한 것인데 그것이 지금도 인재 판단의 주요 기준이 되는 ‘신언서판(身言書判)’입니다.


신언서판은 단어 그대로 ‘몸(용모)’과 ‘언어’, ‘글솜씨’와 ‘판단력’을 일컫는 것인데 ‘몸’은 단순한 ‘용모’를 넘어 그 ‘행동거지’도 포함하는 것이라 보입니다. ‘말’과 ‘글’ 그리고 ‘판단력’은 모두 ‘생각’과 관련된 영역으로 볼 수 있으니 신언서판은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총체적 판단기준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몸, 특히 ‘얼굴’은 그 단어의 유래(얼+꼴)에서 알 수 있듯 ‘얼(정신, 생각, 사상)’의 ‘꼴(모양)’ 즉 한 사람이 가진 ‘생각’이 집약되어 드러나는 것이 바로 ‘얼굴’이며, ‘신(身)’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고약한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 아름다운 생각으로 차 있는 사람을 굳이 깊은 대화를 나눠 보지 않고 그 얼굴만 보더라도 구분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성경을 통해 보자면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과일을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과일을 맺는다.” 했는데 이는 ‘신언서판’을 ‘과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해도 큰 무리가 안 될것입니다. 이를 정명석 목사께서는 ‘뇌(腦) 과일’이라는 새로운 단어로 다시 한번 명쾌하게 말씀하셨습니다.



1.png



선교회의 핵심 교리 중 하나인 ‘타락론’에 등장하는 ‘과일’(선악과) 이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된 것입니다. 선악과(果)는 문자 그대로의 ‘과일’이 아닌 사람의 '사랑의 핵심지체'이며 이를 통한 ‘타락’이라는 행위는 결국 하나님의 깊은 뜻(창조목적)을 헤아리지 못한 잘못된 ‘인식과 생각’, ‘뇌’에서 비롯되었음을 분명히 밝힌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선교회를 적대시하는 일부 인원의 제보를 받은 언론에서 이 ‘과일’에 관한 목사님의 언급을 교묘하게 편집하여 목사님께서 회원에게 부적절한 행위를 요구한 듯 오해하게 하는 내용으로 만들어 이를 보도 해버리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2.png




행실(身)과 생각(言.書.判)의 근원이 되는 '뇌', ‘뇌 과일’


이것이 하나님과 통하는 ‘영적 소통’의 요체(要諦)임을 강조해 온 정명석 목사님의 말씀을 어이없게 비틀어 버리는 참사(慘事)를 저지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과일'에 관한 말씀을 이렇게 왜곡하여 쓸 수도 있구나....수십 년째 그의 말씀을 직접 들어 온 필자에게 지금의 사태는 어이가 없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보입니다.


사실 선교회는 이와 유사한 피해를 입은 적이 또 있습니다. '열의 하나(생명 결실의 십일조)'를 전도하자'는 말씀을 '여자 하나 데리고 오라'는 식으로 왜곡 보도 했던 사건...


이 황망한 가운데 ‘히틀러’의 입으로 불리던 선동가 괴벨스(Joseph Goebbels·1897~1945)의 말이 문득 떠 올랐습니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또 그의 다른 말 “선동은 한 문장으로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 사람들은 이미 선동되어 있다.”


만약에 누군가 '요즘 유럽에서는 초등학생들도 성관계를 맺는다'라는 말로 최근 무너진 성의식에 대한 깊은 우려를 드러냈는데...

선동가는 이 한 마디로 발언자를 소아성애 옹호론자로 만들어 사회적 질타를 받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론의 힘은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실로 큰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더욱 언론의 말(言)과 글(書) 그리고 판단력(判)은 정말 중요한 기준입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말(言)과 글(書) 그리고 판단력(判)을 통해 그들이 어떤 존재(身)인지를 우리는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언론은 항상 이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자칫 선동가로 전락할 수도 있기에...

 

오랜 기간 오직 성삼위 하나님과 이웃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과일 맺기에 노력을 다 하고 있는 선교회와 목사님. 세상 가운데 이 진실이 널리 전해 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조회수
2,833
좋아요
4
댓글
3
날짜
13/7/2022

다른 칼럼의 최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