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奉局長」的三分錢專欄時間! 局長的文筆水準或許不值「三分錢」…但還是解開主日話語後採用世上的語言撰寫成專文囉。
이스라엘 사관학교의 임관식이 열리는 곳.
신병들도 훈련을 마치면서, 반드시 행진하여 가 봐야 하는 곳.
바로 ‘마사다
(Masada)’라는 곳입니다.
마사다는 히브리어로 ‘요새’라는 뜻인데, 이스라엘 남동부에 위치한 옛날의 산상 요새입니다.
동쪽은 400m 높이의 절벽이 있고, 서쪽도 주변 지역보다 100m 이상 높이 솟아 있는 말 그대로 ‘천혜’의 요새입니다.
(마사다 요새, 출처 위키백과)
이곳은 유대 전쟁 당시 유대인들이 마지막까지 로마군에
항거하였던 격전지로 960여명의 유대인이 몰살 된 비극의 장소입니다.
전쟁 당시 극우파 민족주의자들이 군대를 조직하여 소수의 로마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던 마사다 요새를 무력으로 정복한 후,
물과 식량을 포함한 군수물자들을 체계적으로 준비하여 로마군에 장기적인 항전을 벌일 새로운 교두보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70년 막강한 군사력의 로마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까지 철저히 파괴한 후 유대인 반란의 잔당마저 소탕하기 위해
73년 실바(Silva) 장군과 로마 제10군단을 마사다로 보내 대규모 전투를 벌이게 합니다.
로마의 오랜 기간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대비 되어 있던 마사다는 쉽게 함락 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로마군은 요새 꼭대기의 견고한 성벽을 파괴시키기
위해 마사다 성곽 주위에 높은 인공 언덕을
만들기로 합니다.
이 공사에 유대인 노예를 동원하였기에
마사다의 저항군들도 동족을 차마 공격할 수 없어 결국 공성을 위한 높은 언덕이 완성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때 마사다 의 유대인들은 이 모든 것이
결국 ‘우리가 저지른 죄악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다.’ 깨닫고,
‘포로로 잡혀 온갖 수모를 겪느니 명예로운 자결을 하자’고 결정합니다.
먼저 가장들이 그 아내와 자녀들에게 눈물의
작별을 고한 후 죽이고, 남자들끼리 다시 모여 순서대로 한 명씩 먼저 죽은 아내와 자녀들을 끌어안고 목을 내밀어
칼을 맞았습니다. 최후에 남은 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 967명의 ‘마사다의 최후’가 역사에 남게됩니다.
오늘 날 이스라엘의 장병들은 바로 이 마사다에서 “Never Again”을 외치며 그 날을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 나지 않게 하겠다
결의를 다집니다. 해외동포들도 마사다를 찾아 그 흙을 병에 담아가며 이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자 합니다.
유대인의 속담 중에 ‘망각은 포로 상태로 이어진다. 그러나 기억은 구원의 비밀이다.’ 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그 날에 대한 ‘기억’. 이것이 국토와 주권, 국가의 구성 요소를 상실한 체 천 년이
넘는 기나 긴 세월 속에서도 살아남아 오늘의 이스라엘을 존재하게 한 비밀입니다.
또한 수 많은 종교 핍박에도 '유대교'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예시바(Yeshivah), 바로 율법학교에 의해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로마의 황제에 성전은 무너뜨리더라도, ‘율법 학교’는 존립할 수 있게 해 달라 요청했던
지혜로운 한 지도자 덕분으로 ‘랍비(Rabbi)’ 양성학교인 예시바는 남아 있을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교는 성전(예배당)이 따로 없지만, 이 ‘학교’에서 배출 된 수 많은 랍비들에 의해
회당(Synagoge)에서 유대교의 정신이 지금까지 전해 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랍비들은 성직자가 아니라 평신도 입니다. 이들은 아무 종교적 의례를 주관하지 않습니다.랍비들의 주요 업무인 설교도 종교적 의례로서가 아닌
‘교사의 가르침’입니다.
랍비로서의 권위도 종교성에 바탕을 두고 ‘부여’ 된 것이 아니라, 랍비 본인 스스로 갈고 닦은 깊은 학문에 대한
가르침과 탁월한 도덕성등을 통해 ‘자율적으로 생성시킨’ 권위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끝까지 기억 하는
끈기, 그리고 그 기억을 지속하게 해 주는 교육의
힘. 이것이 오늘 날 세계를 좌지우지 하는
유대인들의 생존과 성공의 비결 인지 모르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아픔'을 기억해야 되는 역사인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역사는 '기쁨'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되는 역사 일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 가슴 벅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