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奉局長」的三分錢專欄時間! 局長的文筆水準或許不值「三分錢」…但還是解開主日話語後採用世上的語言撰寫成專文囉。
양극화, New Normal 시대
자본주의는 태생(胎生)적으로 빈익빈 부익부, 자본의 양극화 현상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의 양극화보다 더 심각할지 모를 직업의 양극화 현상도 점점 더 눈앞의 현실로 구체화 되고 있습니다.
‘도구(정보통신, 기계, 컴퓨터…)’의 발달로 인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도구’를 초월하는 위대한 직업, 혹은 ‘도구’를 설계하고 마음껏 부리며 다스리는 ‘직업’. 그 외에는 ‘도구’에 종속되거나 아예 ‘도구’를 투입할 가치도 없는 ‘허드렛일’하는 직업으로 양극화되어 갈 것으로 보입니다.
‘New Normal(새로운 정상, 표준)’이란 용어는 원래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으로 경제 위기 이후 등장한 경제용어였습니다. 그러나 이 용어는 어의가 확대 적용되면서 기존에 정상(正常)으로 여겨졌던 것이 더이상 정상이 아닌, 전혀 새로운 것이 정상이 되는 시대를 일컫는 말이 되고 있습니다.
남(男)과 여(女)가 때가 되면 적당한 짝을 찾아 결혼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었다면 N포세대(결혼, 취업, 출산 등 많은 것을 포기한 세대)는 ‘결혼’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엄청난 부담이기도 하며, 나아가 굳이 결혼해야 하는지? 안 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런 때가 또한 New Normal 시대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New Normal의 근저에도 ‘양극화’ 현상이 수반 된다는 것입니다. 굳이 결혼 않아도 되니 주위 사람 눈치 안 보고 ‘성직자’처럼 고매한 자기 인격 완성의 삶을 편하게 추구하며 살 수 있는가 하면, 혼인과 성(性)의 순결성에 대한 개념이 희석되면서 무분별하게 성적(性的)욕망을 엽기적으로 추구하는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남과 여가 결혼 하는 것이 아닌, 남(男)과 남(男), 여(女)와 여(女)가 결혼하는 것도 정상이 되려 하는 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세계 최 강국의 대통령, 종교계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까지도 이미 동성애를 사실상 인정하는 것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생각이 신'이 되어야 하는 이유
결국, 이러한 트렌드로 인해 사람들은 ‘신(神)의 생각’으로 살게 되든가 아니면 ‘죄짓는 것이 정상(正常)’인 줄 알고 살게 될 것입니다. 정명석 목사께서 생각이 신이 되어야 하는 것을 그토록 강조하시는 것도 바로 신의 생각으로 신의 세계에 살지 않으면, 죄가 죄인줄 모르면서 죄의 세계에 빠져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신(神)은 절대자(絶對者)입니다. ‘절대적’으로 행하십니다.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하십니다.
남자는 평생 ‘남자’이고, 여자는 평생 ‘여자’입니다. 이런 것이 ‘절대적’입니다. 이와 같이 신의 생각은 영원히 신의 생각이고 이것이 아니면 죄의 생각, 죄의 세계입니다.
새로 올 역사는 더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신부의 역사에서는 ‘신부’가 아니면 의미 없는 그저 ‘남’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차원 낮은 역사가 진행되는 때는 역사를 ‘하나의 쉼터’로 여기고, 잘해 주면 잘하고 못 해주면 못하고, ‘역사의 주인’이 되어 뛰지 못하는 자들도 함께 존재할 수 있습니다. 배고플 때 단사표음(簞食瓢飮)도 진수성찬이고 목이 탈 때는 구정물도 약수 같이 여겨지듯 말입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러한 사람들은 ‘역사의 주인 의식’과 ‘책임 의식’을 가지고 사는 자들과 확연히 갈리게 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곧 다가올 위대한 ‘역사’를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그 결정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절대적인 신의 생각을 품고 절대적인 일을 절대적으로 행하지 않고, 그저 간절하지 않은 생각으로 간절하지 않은 곳에서 간절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가는 위대한 역사에 뜨겁게 동참하지 못 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저 한순간 ‘거쳐 가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