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奉局長」的三分錢專欄時間! 局長的文筆水準或許不值「三分錢」…但還是解開主日話語後採用世上的語言撰寫成專文囉。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변하는데 혼자 옛 것에 빠져 있다면 심각한 상태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저마다 ‘옛 것’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두고서는 ‘새것’을 만들지 못하여 휴거 될 수 없다 명확한 하늘의 말씀이 있음에도 옛 생각, 옛 행실, 각종 환경을 과감히 버리지 못 하는 것은 과연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필자는 두 가지로 그 이유를 정리 해 봤습니다. 첫째 내 삶에 스스로 젖어 있어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옛 생각, 옛 행실을 통해 그간 성취 해왔던 작은 성공들에 만족하고 그의 반복을 기대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익숙해졌고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기에 과거와의 완전한 결별이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살펴 보면 ‘익숙해짐’이란 것은 실로 경계해야 할 대상입니다. 언뜻 보면 편하고 좋은 단어처럼 들리지만 금주 말씀에 비추어 보면 새로운 도전이나 학습, 성장을 이루지 못 하고 있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뭔가 똑 같은 방법으로 반복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은 성공이 주는 위안을 경계하라
그간의 작은 성공이 주는 위안도 경계해야 할 대상인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핸드폰 단말기의 세계적 브랜드 모토로라가 노키아에 맥없이 무너졌고, 세계 휴대폰 시장의 67%까지 점유 했었던 노키아도 결국 망하고 만 것은 모두 이 전의 성공에 대한 자만으로 눈이 가리워져 ‘변화’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승자의 저주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승자는 자기를 승자로 만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망하게 된 다는 것입니다. 광속을 넘어서는 속도로 변화 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변화’ 하거나 아니면 ‘도태’되는 것 이 외에 평화롭게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이란 없는 것입니다.
변화를 달리 표현하여 ‘혁신(革新)’이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가죽을 벗겨내고 새로 입히는 것을 뜻하니 자기 스스로 변화하기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자기 스스로가 옛 것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도 못 하시고 성자도 못 하신다 하십니다. 오늘 내가 경쟁해야 할 상대는 ‘어제의’ 내가 되고 내일 나의 경쟁상대는 ‘오늘의’ 내가 되도록 매일 매일 끝없는 자기 부정과 자기 극복이 연속 되어야 하겠습니다.
매일 죽는 각오를 늘 새롭게 하라
사도 바울 선생도 ‘그리스도 안에서 매일 죽노라’ 하였는데 이와 같은 맥락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살면 내 안의 그리스도가 죽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매일 죽는 각오를 늘 새롭게 하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부지런히 자기를 죽이는(만드는) 사람에게는 성자도 투자하신다 약속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울러 이 모든 변화의 원동력은 성자와 보낸 자를 진정 사랑하는 진실한 마음이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끝없는 변화의 최종 목적지, 변화의 완성은 결국 온전한 하늘 신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버려야 할 ‘옛 것’에 대한 정의는 더욱 명확해 집니다. 결국 성자와 상관없는,성자 사랑이 원동력이 아닌, 자기를 위한, 제 스스로 행한 일들입니다. 오직 성삼위를 모시고 사랑하며 그 의 몸 되어 행하는 일이야 말로 우리가 찾아 해야 될 새 시대, ‘새로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