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빤 오늘도 강행군이다~"
걱정하지 말고 잘 지내란 말과 함께 보내온 아빠의 반가운 메시지. 얼마 전, 고모 내외와 함께 근 4년 만에 해외여행을 떠나셨다. 마닐라에서 북서쪽 루손섬에 있는 피나투보산을 거쳐 바기오 계단식 논까지 필리핀의 푸름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바기오 고산족 원주민들의 환히 웃는 얼굴에 푸근함을 담고 루손섬 북부 일대를 아우르는 보름 남짓 긴 여정. 필리핀의 숨은 명소 속속들이 구경시켜 주시려 몸도 마다하지 않는 아빠의 열정이 불탄다. 새벽부터 좁은 시골길을 열 시간씩 이동하는 것만 아니면 다 괜찮다고 하신다. 몸은 힘겹지만, 여행 가이드로 잊지 못할 추억이 될 듯하다. 필리핀 여행이 어땠는지 한참 동안 후일담을 들었다. 산을 오르던 중 다리에 쥐가 나서 식겁했다는 말에 괜스레 서글퍼지기도 했지만, 끝까지 오르신 아빠가 멋져 보였다.
아빠의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느 날 아침부터 사뭇 진지하게 영어로 혼잣말을 내뱉으신다. 갑자기 영어 공부를 시작하신 걸까. 알고 보니 곧 고모네에 중요한 외국 손님이 한국에 오니 같이 투어를 신경 써달라는 부탁을 받으셨다고 한다. 영어로 쓰인 일정표를 훑어보며 완벽한 영어는 아니지만 이만하면 알아들을 거라며 아빠의 실력을 자랑해 보이신다. 내가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닌데 걱정부터 드는 반면 실전에서 몇 마디라도 직접 해보면서 느는 거라며 기대감에 들뜬 아빠. 아빠의 자신감 하나면 못할 게 뭐 있나? 든든함이 느껴진다. 외국인 상대는 처음이라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함께 일정을 잘 마무리하고 웃으며 헤어졌다니 나도 기쁘다.
누구든 태어나 처음 살아보는 삶이니 완벽하진 않아도 스스로를 칭찬하며 채워나가는 보람이 이런 게 아닐까. 때로 염려도 걱정도 있겠지만 물러서지 않고 성큼성큼 전진해 가는 아빠의 모습을 머릿속에 항상 그려야겠다. 어찌 보면 매일의 연속되는 도전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낼모레면 일흔이 가까운 아빠는 또 어떤 도전기를 남기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