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 하루 전날 친정엄마가 나를 급하게 불렀다.
집에 가보니 식탁 위로 오곡밥과 시래기, 고사리, 가지 등 나물무침이 한 가득이다.
“뭘 이렇게 많이 했어?”
“대보름 음식은 원래 나눠먹을수록 복이 된대.”
서울로 상경한지가 30년이 지났어도 아직 시골의 정서를 잊지 않았다.
식탁에서 큰 반찬통을 꺼내 나물무침들을 하나 둘 담는데 엄마가 말을 꺼냈다.
“너 외갓집 알지? 너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할아버지와 같이 살았어.
너한테는 외증조겠네.”
“외증조 할아버지가 왜?”
“예전에 우리 할아버지가 꼭 그렇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렀어.
밥 먹고 가라고. 우리 집에 먹을 것이 있으니까 밥 한 술 뜨고 가라고.”
“진짜? 왜? 배고픈 때 아닌가?”
“그치. 그땐 다들 배 굶고 살았지.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모르는 사람들을 불러서 집에서 밥을 해 먹였어.
아니면 뭐라도 사람들 손에 쥐어 주기도 했고.”
“아, 그래서 외갓집이 잘 되었나?”
“그래. 형제들 전부 다 잘 됐지.”
그런데 놀랍게도 외갓집은 그 이후부터 가업이 불같이 일어나더니 그 형제와 자손까지
못사는 자가 없을 정도로 잘 되었다. 시골 큰 외삼촌은 그 땅을 밟지 않고 살 사람이 없을 정도로
땅 부자가 되었고, 서울로 상경해서 사는 이모와 작은 외삼촌들은 맨손으로 일군 사업이 번창하게 되었다.
왜 그렇게 잘되었을까?
외증조 할아버지에게 밥 한 술 얻어먹고, 뭐 하나라도 얻어 간 사람들이 무엇으로 갚았을까 생각해봤다.
그 중에는 다시 갚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 조차도 힘든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대신 입으로 복을 빌었을 것이다. “나중에 잘 될 것이요.”, “복 받을 겁니다.”, “만사형통 하시오!”
그 빌어준 축복의 말들이 정말 복이 되어 돌아온 것 같았다.
은혜를 베풀면 돌아온다더니 딱 그 모습이었다. 이것은 보름의 정신과도 닮았다.
보름에는 오곡밥을 세 집 이상의 것을 먹어야 그 해 복이 온다고 해서 집집마다 서로 나누어 먹었다.
그래서 자신의 음식을 이웃에게 나누는 것이 보름의 풍습이 되었다.
베푼다는 것,
남을 위해 하는 것 같아도 결국 다 나에게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