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

세한도by 펜끝 이천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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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 6년 55세 되던 해에 추사 김정희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제주도로 유배된다. 안동김씨와의 세력다툼에서 밀려 가까스로 목숨만을 건진 상황이었다. 대부분 유배자는 중앙에서 불러줄 날만 기다리며 울분의 술이나 마시며 지내는데 추사는 독서에 매진하고 제주 지방의 유학생들을 가르치고 벼루 열 개를 구멍 내고 붓 천 자루를 닳아 없어지게 할 만큼 새로운 서체에 정진했다. 고난의 시간을 자기 수양의 기회로 삼았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 위에서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 임금의 허락 없이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감옥 같은 곳이었다. 게다가 세도 세력의 눈 밖에 날까 그 누구도 추사를 찾는 이가 없었다. 유배 3년 차에 부인마저 사망하는 불운을 겪었다. 추사는 갈수록 가족과 벗들을 향한 그리움과 외로움에 긴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세상이 그를 외면해도 평생 그를 존경하며 끝까지 함께 한 제자가 있었으니 바로 이상적이다. 그는 역관의 신분으로 중국을 12번이나 다녀온 전문가였다. 그는 중국에 갈 때마다 추사를 찾아 접하기 힘든 귀한 책들을 구해 추사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었다. 사실 책은 핑계요, 위험한 상황에도 먼 길 돌아 자신을 찾아주는 유일한 제자였다.

김정희는 감사의 의미로 작은 그림 선물을 보냈다. 그림은 텅 빈 배경 안에 초라한 판잣집이 한 채, 그 옆에 소나무와 잣나무 고목이 그려져 있었다. 거기에 논어의 글귀를 적었다. ‘날씨가 차가워진 후에야 송백의 푸름을 안다.’

그리고 감사의 내용을 남겼다. ‘한때는 자신과 가까이하려 그리 애썼던 자들이 지금은 하나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데, 과거에도 크게 눈에 띄지 않았지만, 묵묵히 자신을 지키던 자가 이제야 그 빛을 발하니, 참으로 사람은 비바람과 겨울 속에 그 진심을 드러내는 것 같다. 지금 그대는 내게 이전에도 더함이 없고 이후에도 덜함이 없다...’

그 선물이 바로 세한도, 국보 180호다. 세상도 의리를 지키면 국보급 선물을 주는데 하물며 하늘 의리를 지킨다면 어떤 선물을 줄까! 생각이 깊어지는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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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5/1/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