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

뜻밖의 감사by 주아나

 

 



5월의 끝자락, 한국에 메르스가 상륙했다.
예전에 조류독감이나 사스가 왔을 때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초여름에도 길거리에서 방진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제법 만나니
남의 일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결국, 6월에 첫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일주일 휴교령이 떨어졌다.
상황을 봐서 더 연장될 수 있다고 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안 간다고 무척 좋아하며 펄쩍 뛰지만,
나는 한숨부터 나왔다. 
‘피가 끓어오르는 이 두 열혈남아와 어떻게 일주일을 보내나.’

예전 같으면 걸어서 어린이 대공원을 간다든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박물관이나 산에 간다든지,
아니면 점심까지 조금만 집에서 버티다가
오후에 초등학교 학교에 가서 모래 놀이를 하는 방법 등
아이들과 놀 방법은 꽤 많았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은 불가능했다.
우리 동네에 있는 큰 병원 두 곳에 확진자가 출입했다고 했다.
또 어떤 확진자는 지하철에 약국까지 이용했다고 했다.
들려오는 소문에 대공원에 메르스 의심자가 돌아다녔다고 한다.
학교들은 휴교령에 외부출입 금지라는 팻말을 교문 앞에 써 붙였다.
사람 모이는 곳도, 대중교통도, 놀이시설도 갈 수가 없었다.
아이가 아파도 병원에 가기가 꺼려졌다.

기껏 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 입에 마스크를 씌우고
사람들이 없는 오전 시간이나 밤에 집 근처로 산책을 하거나
집 앞에서 골목 축구를 하거나 좁은 옥상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뿐이었다.

몇 발자국만 더 떼면 미끄럼틀이 아주 멋진 놀이터가 있는데,
눈앞에 있어도 갈 수가 없었다.

집에서 두 아이와 육아전쟁을 벌이며 반쯤 넋이 나가 시름하고 있을 때,
새삼 이런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만 해도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었는데...
아니 얼마 전만 해도 사람 많은 곳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는데...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
누구든 마음껏 만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선물이었구나...’

너무나도 당연한 선물인지라 선물인지도 몰랐다.
은혜를 받고도 무지하여 감사하지 못했는데
그런데 나름 갇히는 상황이 되다 보니
어려움 가운데 그 숨겨진 은혜가 드러난 것 같다.
그래서 주님은 환란 중에도 감사하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 

때론 불만불평으로, 때론 구해달라는 기도만 했었는데,
이제야 감사기도도 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자유, 참 귀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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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12/8/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