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

Love Letterby 도토리

러브레터

 

 

-이정명-

 


오랜만에 팬시점에 들어갔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편지지 파는 곳에서 한참 서 있었다. 가끔 마음에 드는 엽서나 편지지를 발견하면 쓸 일이 없어도 사서 모아 놓곤 했다. 그렇게 모아놓은 엽서가 몇 장. 그렇게 해서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편지지가 몇 묶음.


언젠가 나만의 공간이 생기면 햇빛이 드는 창가나 깨끗한 벽면에 붙여 장식해도 좋을 것 같다. 최근에는 원통모양의 편지봉투를 하나 샀다. 꽃분홍색에 하얀 땡땡이 무늬가 있는 원통형 봉투. 안에는 같은 색의 편지지 몇 장이 들어있었다. 책상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고 쉬다가 책꽂이를 둘러보니 빼곡히 쌓아올려진 책사이로 꽃분홍색이 보인다. 꺼내어 펼쳐 보고 한번 씨익 웃어본다.


'누구에게 쓸까?' 비닐을 벗겨 봉투를 꺼내고 원통의 뚜껑을 열어 편지지를 펼쳤다. '무엇을 쓸까?' 펜까지 들어 편지지 위에 무언가를 쓸 준비를 마쳤으나 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누구에게 쓸지도 떠오르지 않는다.


'평소에 나는 누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분명 누군가를 그리워했었고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어 했었던 것 같은데. 주위에 소중한 사람들이 많지만 다들 나름의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왠지 내 고민까지 얹어주고 싶지 않다.


어쩌면 나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문득 '하나님' 이라는 단어가 머리 위로 그려진다. 편지지 위에 '사랑하는 하나님께' 라고 썼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로 시작하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잊고 살 때가 많지만, 언제나 내 옆에 계신 분. 내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잘 아시고 나의 어떤 모습도 보여줄 수 있는 분. 나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쳐 주시지만 또 일어서게도 해 주시는 분. '사랑합니다.' 로 끝맺음한 편지지를 다시 접어 원통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조회수
10,653
좋아요
0
댓글
1
날짜
20/5/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