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석 목사_나만이 걸어온길

나를 어떻게 가르쳐 만들었나?

인생들을 보면 모두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정명석 목사가 걸어온 길 또한 그랬다. 어떻게 보면 영광스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고생스러운 길이었다. 그러나 보는 자로 하여금 교훈으로 삼아 삶에 지름길이 되라고 이 글을 하늘의 감동으로 쓴다.

세상 존재물은 하나님이 창조해 놓았으나 사람이 손대기에 따라 어떠한 물건이 되느냐가 좌우된다. 사람이 흔하게 밟고 다니는 진흙 덩이도 손으로 착착 이겨 곱게 만들어 1200도에 구워내면, 감히 밟을 수 없는 응접실의 귀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도 하나님의 창조물이지만 재차 하나님이 손대기에 따라 그 삶이 좌우된다. 정명석 목사의 ‘나만이 걸어온 외로운 그 길’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손대온 지난날의 이야기다. 이 글을 통해 모두 자기 인생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손을 대시는지 깨닫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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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정명석 목사의 조부가 그 아들에게 조용히 숨죽여 가며 “너에게 해 줄 말이 있다. 우리가 원래부터 지금의 이 달동네에 산 것이 아니라 나는 공주 반포면 석봉, 계룡산 동학사 밑의 마을에서 살았다. 대원군 때 그의 밑에서 일하며 경복궁을 드나들며 한양에서 살았다.”고 말씀하셨다.

지금도 공주 근방에 가면 나이 많이 드신 분들이 정명석 목사의 조부에 대한 이야기를 희미하게나마 들려주신다. 조부는 충청도 일대에서 상납하는 국세를 거두어다가 말 12필에 실어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돕는 일을 하셨다. 조부가 대원군 밑에서 고종의 수종을 들 때는 일본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라 까딱 잘못하면 목숨이 위태로웠다.


대원군은 조부를 아껴 평양 감사를 나가라고 임명했으나 조부는 고종의 수종을 드는 것이 최고의 보람이라고 하며 결국 떠나기를 거부하셨다. 고향은 공주였지만 생활을 거의 한양에서 하셨다. 고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한때 땅도 희사를 받았는데 그 땅이 바로 계룡산이다.

조부에 대해서는 많은 일화가 있는데 정명석 목사는 아버지에게 이런 얘기도 전해 들었다. 공주에서는 해마다 깃발 뺏기 행사를 했다. 조부의 동네와 건넛마을도 깃발 뺏기를 했는데 할 때마다 조부의 동네가 지는 것을 보고 화가 난 나머지 한 번은 자기 동네 깃발에다 고종의 어인을 받아와서 깃발 뺏기를 하게 되었다.


건넛마을에서는 상대의 깃발에 임금의 어인이 찍힌 것을 보더니 한 사람도 감히 깃발을 뺏으러 오는 자가 없어 조부의 동네가 그냥 이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명석 목사는 조부가 살던 동네에 가서 물어보니 그 깃발이 얼마 전까지도 전해 오다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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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정명석 목사의 조부는 일본의 침략 하에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충격을 받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농토를 일본 사람들에게 다 빼앗기고는 할머니와 3남 1녀와 함께 진산면 묵산리로 옮겨와 6개월 동안 사셨다. 할머니는 나 정승의 딸이었는데 정승의 딸이라는 것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처지였다. 그렇게 은둔생활을 하니 생활이 빈곤케 되어 머슴살이도 9년이나 하셨다. 그 당시 정명석 목사의 아버지는 아홉 살밖에 안 된 어린 나이였다.

조부는 시대가 일제 탄압 시대이고 궁에서 얼쩡거리던 사람이라면 다 끌려가서 족속을 멸하던 때라 할 수 없이 벙어리가 되어 살다시피 하다가 돌아가실 무렵 아들에게 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털어놓으시면서도 행여 후손이 끊어질까 염려하여 아무에게도 이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과거에 왕실에 녹을 먹고 산 것이 뭐 그리 대단하냐는 식으로 자식들에게 이야기를 안 하시다가 죽음을 앞두고서야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털어놓으신 것이다. 그때 정명석 목사의 조모도 흔적을 없애려고 정씨 족보를 불에 태워버리고 후손들에게는 집에 불이 났을 때 족보가 불탄 것처럼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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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정명석 목사가 하늘의 길을 가니 조부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흔히 말하기를 할아버지 피가 손자 때 흐른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정명석 목사 역시 할아버지를 닮아 민족의 혼이 강한 것 같다.

정명석 목사의 아버지는 금광에서 40년 동안 광부로서 인생을 보냈다. 이렇게 살아가니 가족 역시 두메산골을 벗어나기가 힘들었고 달동네를 오랫동안 면치 못하고 살아왔다.

월명동이 요즘이야 산골짜기라 공기도 맑고 물도 좋아 별장 같은 지역이지만 삼사십 년 전만 해도 산 동물이 득실대고 원주민 같은 화전민들만 살던 지역이었다. 정명석 목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농사짓고 사는 것이 편하다. 땅은 사람을 안 속인다. 그 생활이 완전한 생활이고 보람되지 않느냐.”고 하셨다. 아버지도 조부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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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짝의 삶은 일 하다 온통 진흙투성이가 되어 살아야 하고 온갖 고통과 궂은일을 다하면서도 제대로 못 먹고 사는 노예 같은 삶이다. 그렇게 사는 삶이니 과거 정명석 목사의 삶은 정말 고통 그 자체였다. 그래서 정명석 목사는 해만 뜨면 집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차라리 막노동을 하더라도 도시나 전깃불이 좀 들어오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골은 사람 골병들게 하는 곳이라 생각하고 아예 정을 떼려고 하루에도 행여나 하고 시인들처럼 하늘을 자주 쳐다보았다. 혹여 자신이 갈 길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그때는 정명석 목사가 마음을 못 잡아서 시골이 고통스럽기만 하였지 하나님이 오늘날의 자신을 만들기 위해 갖은 인생의 고통을 느끼게 해주며 연단하는 것을 전혀 몰랐다. 깨닫지 못하면 인생은 짐승 같이 살게 되고 마음고생만 더하게 되는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부모님은 정명석 목사에게 그분들의 철학을 가르쳐 주고 앞날의 삶을 제시해 주었지만, 정명석 목사는 도시로 나가려는 다른 생각을 하였다. 그렇지만 결국엔 도시로 나가지 못하고 산속으로 들어가 기도 생활을 하며 성경을 보았는데, 성경을 읽다 보면 열불이 나고 천불이 나서 시간이 있으면 거리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 인생 이야기를 해주었다.

밤이면 굴에 다시 돌아와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인생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은 은밀하게 인생을 바로 살라고 말씀하셨다. “자세만 바르지 않아도 허리가 아프고 몸이 아픈데 인생을 바로 살지 못하면 갖은 진통이 오는 법이다.”, “돈과 명예, 여자, 좋은 집보다도 그 주인 되는 나를 더 사랑하라. 그래야 네가 땅에서 잘되고 형통할 수 있다.”며 정명석 목사의 마음속에 은밀한 음성으로 깨달음을 주셨다. 그리고 “앉아서 신의 음성만 듣지 말고 실천하여야 한다.”고 하셨다. 또한 “네가 전심으로 나를 섬기고 변함없이 내 뜻을 좇아 행한다면 네가 세상에서 높이 굄을 받게 될 것이며 너를 존경하며 따라오는 무리가 구름 같을 것이다. 그때 이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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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정명석 목사에게 또 깨우쳐 준 말씀이 있었다. 부지런히 인생을 배우라는 것이었다. 하루는 정명석 목사가 물었다. “내게 배우라고 하셨는데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인생을 어떻게 배우는 것입니까?” 그러자 깨닫게 하시기를 “마음을 넓게 쓰라.”고 하셨다. 어떻게 하면 넓어지느냐고 물으니 “세상 이치를 깨달아야 마음이 넓어지고 너그러워진다.”며 “성경을 읽고서 좋다고 생각하면 실천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네 소원만 이루기 위해 몸부림치지 말고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해 전심을 다 하며 내 소원을 위해 살면 네 소원도 수백 배 이상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셨다.

정명석 목사는 그때 나 같은 인생이 어떻게 감히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느냐고 하였는데 성서를 다시 보라고 하며 은밀하게 깨우쳐 주셨다. 그래서 성경 한 번을 며칠 동안에 읽었다. 읽고서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통해 역사해 오셨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정명석 목사 자신도 그렇게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하며 기도했다. “네가 잘 되는 길은 나의 일을 잘되게 하는 것이다.” 라고 주님께서 훤히 환상으로 나타나 그 옆에 서서 말씀하셨다.

이렇게 하늘은 정명석 목사를 20여 년 동안 깨우쳐 주셨다. 그때 들은 것으로 4천 잠언을 쓰게 되었고 그때 성경의 바른 해석을 물어서 배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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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7/4/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