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_특집간증

하늘과 나의 사연

-제45주년 알파절 기념 수기 공모전 야심작 수상작-


12345.JPG



저는 천주교 모태 신앙인이었습니다.
23살 때,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남동생을 통해 섭리 교회에 전도가 됐습니다.
어릴 때는 외할머니와 엄마 손을 잡고 성당에 다니며 경건한 분위기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듯 위엄이 느껴지는 건물들을 보면서 카톨릭 신앙인인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개신교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을 대할 때면 내심 ‘내가 진짜야!’ 하는 우월감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엔 개신교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찬양 소리와 기도 소리에 교양 없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렸지만 이분법적 사고에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저희 집에는 십자가상이 늘 걸려 있었고, 성모상이 고고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집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외할머니께서 40년 이상 아침 저녁으로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며 자랐고, 그 곁에서 함께 셀 수 없이 많은 묵주기도를 드렸습니다.
미사보를 머리에 쓰고, 수녀님을 따라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는 자세를 하고 은은한 나무 향이 풍기고 장엄한 오르간 소리와 성가가 울려 퍼지는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게 행복했습니다.
덕분에 선함과 의로움을 이상으로 좇으며 살았고, 청소년기에는 세상에 대한 불만도 많았지만 그나마 종교적 양심 덕분에 방황하는 친구들에게 휩쓸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절대신이 계시기에 선하게 살아야 잘 된다. 그리고 착하게 살아야 죽어서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으로는 지속적인 천주교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학교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미사도 빠지고 결국엔 냉담자가 되어 대학교 4년을 마칠 때는 신상 명세의 종교란에 ‘무교’라고 적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왜 살아야만 하는 건가?’하며 고민이 거듭됐고, 막상 사회로 나가려니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하며 초조함이 커져 갔습니다.
대학교 졸업반이 되어 기사 자격시험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그 당시 도서관의 칸막이 책상들과 의자, 바닥의 카펫 등이 떠오를 정도로 그때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습니다.
책을 보면 멀미가 나고 가슴도 답답했습니다.
‘이것이 내 적성이 아닌 걸까? 4년을 공부했는데...’
졸업을 앞두고 자격증 따기, 어학 공부, 취업 준비로 바쁜 동기나 선배들을 보면서 조급함이 밀려왔습니다.
‘누가 대신 내 인생 좀 결정해 주면 좋겠다.’라는 생각까지도 들었습니다.
성서를 펴놓고 읽으려고 했으나 앞쪽 몇 장을 넘기기가 어려웠습니다.
결국 ‘종교도 나를 도울 수가 없구나. 성서를 읽는다고 뭐가 다르겠어? 내가 이런 걸 기대하다니. 나약하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논과 밭이 펼쳐진 변두리 자취방을 가는 길에도 뜨거운 염원을 담아
“하느님,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그 당시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남동생은 저를 위해 40일 작정 기도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저의 방황과 곤고가 이유 없는 것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계획과 구상으로 전도된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97년 11월 16일... 잊지 못할 저의 전도 날이었습니다.
주말이어서 오랜만에 동생과 저는 고향 집에 내려와 만났습니다. 슬쩍 비친 저의 고민에 동생이 반응을 하며 “인생 문제의 답은 하나님께 있지 않겠어? 기도를 해봤어?”하며 운을 떼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성당도 다니지 않으려고 하고 종교라면 학을 떼던 극적인 유물론자였던 남동생이 그런 얘기를 하니 코웃음을 치게 됐습니다. “네가 기도를 했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그렇지만 “누나, 진리가 뭐야? 진리를 찾아보긴 했어? 어디에 있을 것 같아?”
“누나, 예수님은 사랑해?”
‘그런 걸 누가 말해야 아나?’ 싶기도 하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았으나 입에서는 쉽게 시인하는 말이 나오지 않아 당황했습니다.
동생은 진리가 무엇인지 마치 소크라테스처럼 질문과 답을 번갈아 하면서 저의 얕은 지식을 뒤집어 엎었습니다.
“누나가 사랑하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야?” 그 질문에 저는 “아기 예수님?”이라고 조심스럽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리석은 답을 내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야? 예수님은 어떤 분이셔? 누나는 누구에게 기도하고 있어?” 질문이 계속될수록 지난 23년간 내가 찾던 그분이 하나님인가? 성모 마리아였던가 아니면 예수님이었던가? ‘그 분들이 모두 하나인거지? 누군들 뭐가 중요해. 신이면 됐지’라고 했지만, 말을 이어가기가 몹시 곤란했습니다. 저의 얕은 신앙에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급기야 동생은 “예수님이 2000년이 지나면 다시 오신다고 성경에 써 있는데, 누나는 어떻게 오실지 어디에 계실지? 생각해봤어?”하고 물었는데, 저는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뭐? 예수님이 다시 오신대? 왜????” 정말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신앙을 했던 것인지... 그 당시는 몰랐지만 정말 허울뿐인 신앙인이었습니다.
동생은 혀를 차며 “누나,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해서 사람들이 난리잖아.” 하면서 여러 가지 자료를 보여줬고, “그런데, 예수님이 하늘에서 구름 타고 손오공처럼 오시는 걸까? 성경에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되어 있어. 구름도 비유로 쓰신 거야.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많다고 하지? 그렇게 청중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거지. 깨끗한 구름처럼 하나님 예수님을 잘 믿는 깨끗한 사람들 말이야. 그리고 옛날 예수님이 이스라엘 사람이었다고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으로 나타나실까? 그래도 신앙인이라면 예수님이 오시면 알아보고 맞아야 할 거 아니야?”
충격을 받은 저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동생에게 “동생아, 아무래도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살아왔던 것 같아.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나는 알아볼 자신이 없어. 무슨 수로 알아보겠어?”하고 탄식했습니다.
동생은 “괜찮아, 예수님이라면 진리를 말씀하시겠지. 그 말씀을 들어보면 알아볼 수 있지 않겠어?.”하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동생을 가만히 쳐다봤는데, 동생이 잘난 건 알았지만 얼굴엔 확신으로 가득차다 못해 빛이 났고, 나보다 어림에도 그 한마디 한마디가 힘이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수긍하고 부탁했습니다. “그래, 너는 예수님이 오시면 알아볼 수 있을 거야. 너는 똑똑하니 나보다 먼저 알아볼 것 같아. 네가 예수님을 만나면 꼭 나에게 알려줘라.”하고 말입니다.

동생은 웃으면서 늦은 밤까지 성경의 비유를 풀어주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구약과 신약시대 때 사명자들을 어떻게 쓰셨는지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내 동생이 성경을 잘 아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자기가 아는 왕목사님이 계신데 성경을 2000번 이상 읽으셨고, 기도를 많이 하시면서 젊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걸음을 옮길 때도 어느 쪽으로 갈지 하나님께 묻고 행할 정도로 하나님과 대화하시고, 더구나 옷을 입는 것도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을 봤다며 자신이 본 그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노란 넥타이에 파란 양복을 입으신 왕목사님이 귀여웠다면서... 축구를 좋아하는 동생은 권위 있는 지도자가 아니라 함께 축구하며 발을 맞추고 호흡을 맞추며 축구를 통해 인생과 신앙을 코치해주셨다며 그런 분을 만나게 되어 너무나 행운이라고 신앙이 재밌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는 약간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아닐까 상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에 대해 잘 가르쳐주신다면 나도 배워서 예수님을 꼭 만나고 싶다는 소망도 생겼습니다. 고향집 근처에 있는 교회를 알아보고 다음 날인 97년 11월 17일 작은 건물 2층에 있는 천성교회를 찾아갔습니다.

동생은 서울로 돌아갔고, 저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학교와 자취방에 짐을 그대로 둔 채 졸업식에만 참석하고 꾸준히 교회에서 성경을 배웠습니다.
결국 98년 5월 16일 기본 교리를 배우고 수료를 하게 됐습니다. 또한 6개월 만에 그렇게도 어려워했던 성경을 1 독하게 됐습니다.
성경을 통해 인생의 답을 가르쳐 주신 그를 모두 선생님으로 부르고 있었고 저도 선생님이라는 말이 금방 입에 붙었습니다. 자주 뵙고 싶어 그가 계신 월명동에 가기도 하고 지역 순회를 하실 때에는 쫒아다니며 말씀을 듣기도 했는데 청중에 늘 둘러싸여 있으니 늦은 밤이나 돼야 근처에서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97년은 한창 월명동을 개발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월명동에서 만난 선생님은 늘 츄리닝 차림에 작업 도구를 들고 일하고 계셨습니다. 밤새 돌 작업을 하시다 군고구마 화로 주변에서 늦은 밤에 남아있는 사람들과 어울려 그의 말씀을 듣곤 했는데, 늘 진지하셨고 농담이나 우스갯소리를 하지 않으심에도 말씀을 들으면 기쁘고 재미있었습니다.
말씀 들으며 제가 처음으로 했던 고백은 ‘하나님, 세상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세상이 언제 이렇게도 빛이 났던가요? 건물 하늘 숲 사람도 모두 아름다워 보이고 귀하게 느껴집니다.’ 이였습니다.

주일과 수요예배, 또 매일 새벽에 전해주시는 말씀을 들으며 선생님이 사랑하는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들었고, 신앙을 더 이상 마음속에 품고만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찾고 부르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내 영과 육을 살려주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며 문제와 답이라는 짝을 찾아가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고 해마다 성경을 1 독씩 하게 됐습니다.

제가 만난 선생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지상 속에 이뤄가는 삶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아픈 사람들을 가장 먼저 챙기셨고, 고민과 염려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늘 기도해주셨습니다. 그의 기도로 병이 나았다 인생 문제가 풀렸다는 간증이 끊임없이 들려왔습니다. 저 역시 같은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천하는 삶을 살라고 늘 강조하셨기에 섭리를 만난 이후의 제 인생은 말씀 따라 실천하며 살아보고자 몸부림치는 시간들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첫 직장을 다닐 때 나이도 많고 직급도 높은 이사님이 신체를 터치하거나 무례한 눈빛을 보내곤 해서 너무 힘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사회 분위기가 여사원을 보호해주지 않았기에 묵묵히 감당해야 했습니다. 아침마다 버스를 타고 출근하면서 하루를 잘 보내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불쌍한 그의 영혼을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했기에 함부로 원수 시 할 수가 없었습니다.

2000년경은 선생님을 음해하고 반대하는 자들로 인해 핍박이 극심할 때였습니다. 그는 사랑과 용서에 대한 말씀을 전해주시며 원수같이 본인을 괴롭히는 자들을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보았기에 저 역시도 삶 속에서 배운대로 실천하려고 했습니다. 직장에서 성경도 읽고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다른 이사님들이 저를 보호해주기도 하고, 그 이사가 무안함을 느끼도록 분위기가 흘러갔습니다. 한 달여 지속되던 마음의 괴로움은 끝나고 편히 직장을 다니다가 사무실이 있던 곳의 공사가 완료되면서 저도 그 직장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인생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었지만, 한 가지 예로 든 것이고 삶 속에서는 늘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게 마련입니다. 선생님은 그럴 때마다 ‘환난 중에 복이 온다. 인생이 편안하기만 하면 재미가 없다. 하나님만 찾고 부르라.’ 하시며 이겨내게 해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잠언 중 ‘생각이 신이다’가 제 인생의 모토입니다. 고생돼도 힘들어도 생명길을 가는 것이라고 하시며 하나님 말씀을 절대 붙잡고 ‘생각’을 잘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인생의 파도를 유능하게 타다 보니 스릴도 있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릴 때는 잘 몰라서 막연히 생각했던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커지며 더 가까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날마다 그 성품과 생각 마음을 닮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큰 소리로 또박또박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원을 선생님과 섭리, 그리고 나를 통해 이루시라고... 조금은 당돌하지만 그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하나님께 늘 좋은 것으로 영광 돌리길 원합니다.
지금 저는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작고 귀여운 아기들을 돌보는 보육교사입니다.
가끔 뉴스에서 아이 키우기가 버거워 극단적인 선택을 한 부모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실제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자신을 키우는 것보다 몇 배의 정성과 사랑,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말씀을 들으며 생명의 귀함과 가치를 잘 알고 있기에 더욱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저의 품을 거쳐간 아이들이 자라서 꼭 지역과 나라, 세계까지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그런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기왕이면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멋지게 성공하는 인생 살기를 축복해 줍니다. 아이들 개인도 그 가정도 민족도 세계도 사랑과 평화를 이루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제처럼 오늘도 저는 생명을 사랑하고, 선한 말을 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찾고, 선을 베풀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내일은 더 좋은 모습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리길 원합니다. 선생님께서 그러하시듯 나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가 가르쳐주신 하나님과 성령님, 예수님은 제 섭리 인생 내내 나와 함께 진짜 살아계셨습니다. 진정한 신앙을 할 수 있도록 인생의 길을 밝혀주신 선생님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자랑스럽다는 말로는 너무나 부족하지만, 지구상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45년간 쉬지 않고 해오셨기 때문입니다.




수리산75 성도님의 간증입니다

조회수
21,801
좋아요
3
댓글
6
날짜
12/9/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