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MS 정명석 총재 사건 모두 무혐의 종결
지성이면 감천,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는 것
지난 1월부터 언론보도에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JMS(정식 명칭 기독교복음선교회, 이하 선교회) 정명석 총재 사건이 10월 말에 일단락됐다. 일부 탈퇴자들이 정 총재 측에 대해 고소·고발·진정한 사건들이 검경수사에서 모두 무혐의로 종결된 것이다. 이로써 정 충재에 대한 혐의는 모두 벗겨졌고, 그동안 사실 확인 없이 오보를 쏟아내던 일부 언론사들은 비판을 일삼아왔기에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과거 정 총재 판결에 대해서도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정 총재는 2009년에 같은 혐의로 10년형을 받고 수감 중이기 때문이다. <정경뉴스>가 지난 6월호에 “진실의 판명은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고 십자가의 길을 갈 뿐”이란 정 총재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후 정총재 사건이 무혐의로 종결된 것에 대해 사건 전말을 다시 짚어봤다.
누가 피해자인가?
과거와 현재 정 총재 사건에는 세 가지 유사점이 있다. 첫째 인터넷과 언론에 의해 먼저 폭로되어 여론화된다. 둘째, 증거 없는 고소가 이어진다. 셋째, 탈퇴자들을 선동해 정 총재를 공격하며 돈을 요구하는 반JMS조직이 있다.
작년 11월부터 JMS피해대책협의회 등 반JMS 조직들은 집단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옥중에 있는 정명석 총재를 성범죄, 테러교사 등의 죄목으로 공격해왔다. 언론과 인터넷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해 폭로를 계속했다, 고소·고발·진정이 이어졌다. 증거는 없었다. 그러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들은 진위 여부를 떠나 네티즌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일파만파로 번질 기세였다.
이미 성범죄자로 낙인 찍혀 옥살이를 하고 있는 정 총재에겐 더없이 불리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선교회 측의 적극적으로 대응으로 시의적절 하게 언론의 정정·반론보도를 받아냈고 산불은 번지기 직전에 진화됐다. 작년 6월부터 진행된 10여건의 수사는 10월을 끝으로 모두 무혐의로 종결됐다. 정총재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반JMS 조직의 주장은 힘을 잃고 내부분열로 뿔뿔이 흩어졌다.
▲ 건물이 없어 자연성전으로 불리는 월명동 산골짜기에서 인터넷 생중계로 세계 50개국에 방영되는 선교회 예배 장면
과거에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됐다. 그러나 지금과는 결과가 정반대였다. 10년에 걸쳐 언론과 인터넷 등에 의해 형성된 여론으로 이미 정 총재는 범죄자로 인신된 가운데 2008년 2월 여성 5명의 고소로 법정싸움이 전개됐다. 당시선교회는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역시 증거가 없었다. 그중 한 명의 여성은 양심선언을 하고 고소를 취하하기도 했다. 정 총재는 결국 여성 4명에 대한 성폭행, 성추행 등의 죄목으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수차에 걸쳐 JMS사건을 사회문제로 부각시킨 방송보도는 법원에서 화해권고결정(2005년)과 손해배상판결(2010년)을 받은 바 있다. 이 판결에 따라 선교회는 9000만원을 배상받았다. 화해권고결정문에서 인용한바 방송에 의해 왜곡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방송은 ‘정 총재가 성적 문제가 있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1995년 주일예배 ‘감사하는 생활’이라는 전 총재의 설교내용 중 생명의 십일조를 뜻하는 ‘열의 하나 전도해’를 무슨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도록 음성변조하고 ‘여자 하나 전도해’ 라고 자막을 넣어 방영했다.
둘째, 일반적으로 남녀가 따로 활동하는 선교회의 행사 장면을 여성들만 화면에 보이도록 편집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마치 정 총재가 여성들만 상대하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방영했다.
셋째, 정 총재를 교주로 신봉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선교회 회원들 간에 쓰던 애칭인 Jesus Morning Star(예수님의 새벽별)의 이니셜인 JMS를 정 총재의 영문이름 이니셜이며 선교회의 공식명칭인 듯이 방영했다. 그러나 실제 선교회는 JMS라는 명칭을 한 번도 공식적으로 사용한 적이 없었다.
넷째, 선교회의 월명동수련원이 외부와 단절된 폐쇄적인 공간으로서 밀교의식이나 성추행 등이 일어나는 은밀한 장소인 것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실제 월명동수련원은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고 지역 주민들, 인접한 대둔산 등산객들,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곳이었다.
반JMS 조직의 주동자 김도훈(가명), 김형수(가명)등의 제보내용에 기초한 이 같은 왜곡편파보도에 대한 법원의 결정은 “김도훈, 김형수의 제보내용을 보도하지 말 것, 선교회에 대한 방송을 보도할 경우 48시간 전 고지할 것, 방송분의 5%를 반론 보도로서 보장할 것, 이를 어길 시 건당 3000만원을 배상할 것” 등 이었다.
그러나 이 결정내용은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왜곡된 언론보도와 증거 없는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언론 일각의 재심요구가 뒤늦게 있었으나 여론화되지는 못했다. 언론은 여성들의 배후에 반JMS 조직이 있음을 폭로하고 이들이 정 총재에게 돈을 요구한 편지들을 공개하기도 했다.
▲ 작년 6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정 총재에 대해 진행한 10여 건의 수사를 모두 무혐의로 종결한 검경 통보자료
▲ 1999년부터 10년에 걸쳐 해외 각지에서 있었던 정 총재에 대한 성추문은 사실상 모두 해프닝으로 끝났다. 대만의 경우 허위사실을 퍼뜨린 제보자가 벌금형을 받고 신문에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 JMS사건을 사회문제로 부각시킨 방송보도는 법원의 화해권고결정(2005년 8월 2일)과 손해배상판결(2010년 5월 26일)을 받았다.
수치심을 느끼면 성추행? 억울하게 옥살이 하는 죄 없는 남성들
형사재판에서 증거재판주의에 반하는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는 성범죄 사건에서 비일비재하다. 성범죄는 특성상 범죄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대부분 피해 여성들의 진술에 근거한 정황증거에 의해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다. 결백을 입증할 만한 뚜렷한 증거가 없는 한 피고인인 남성이 불리한 재판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연예인 매니지먼트사 사장이었던 김광복(가명) 씨는 2008년, 소속 여성 연예인 5명의 집단 고소로 구속돼 재판을 받았다. 재판에는 1년의 기간이 소요됐다. 4명에 대해서는 알리바이가 입증돼 혐의를 벗었으나 미성년자 1명에 대한 성추행 혐의가 인정돼 결국 1년형을 받았다. 증거는 없었다. 김 씨는 성형을 해야 할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가슴 언저리를 손으로 약간 눌러 보았을 뿐이었다고 억울해했다. 자기가 성범죄자라면 이 나라 모든 매니저들이 성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법은 이런 경우에도 여성의 수치심을 느꼈다면 성추행으로 인정한다.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방법이 없었던 김 씨는 결국 1년형을 받았다고 한다. 계속 결백을 주장하면 괘씸죄에 걸려 형량이 가중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치소에는 김 씨처럼 억울하게 갇혀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김 씨가 1년 만에 구치소에서 나와 보니 자기가 있던 사장 자리에 부사장이던 후배가 앉아있었다. 사장자리를 뺏기 위해 후배가 여자 다섯 명을 배후에 조종한 것임이 드러났다. 결국 목적은 돈이었다.
조작된 증거와 증인들을 내세운 재판으로 미성년자 성폭력 및 살인범으로 몰려 15년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나온 정원섭 씨의 실화는 꽤 알려져 있다. 정 씨는 1972년 9월27일 춘천경찰서 역전파출소장의 딸을 논둑에서 성폭행하고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언론에 보도된 이 사건은 전국 4대 강력사건으로 규정돼 시한부 검거령이 내려졌을 정도로 파장이 컸다.
경찰은 검거시한 마지막 날인 1972년 10월10일 정씨를 범인으로 발표했다. 급조한 범인이었다. 정 씨는 1987년 12월24일 모범수로 가석방된 이후 재심을 청구했다. 2011년 10월 27일 대법원에서 정 씨는 살인범이라는 낙인이 찍힌 지 39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보상은 아직 다 받지 못했다. 80세가 된 정 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준비 중이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한번 형이 확정된 재판에 대해 재심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시국사건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민의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사법부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보다는 법관이 신이 아닌 이상 오판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여론의 힘을 얻고 있다.
증거재판주의에 의하면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 그러나 이 증거의 증명력은 자유심증주의에 따라 법관의 자유판단에 달려있다.
문제는 언론과 여론이 사법부의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법관 출신 k 변호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사법부 재직 시 솔직히 언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10년형 판결 “비상식적이다”
정 총재에 대한 판결이 언론의 오보가 부채질한 여론에 의해 사회적으로는 이미 범죄자로 낙인 찍힌 상태에서 이루어졌다면 철저하게 여론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판결이 내려졌는지 재고해보아야 한다. 백 명의 도둑을 놓쳐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아야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상기해볼 때 정 총재의 판결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있다.
특히 2006년 4월3일 중국 안산에서 두 명의 여성이 성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한 사건에 대해 4월5일 중국 안산시 중심병원 진단 결과는 “화험 검가 결과 정액이 없다. 정상이다. 강간당한 흔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중국 공안 통역도 “중국 병원 의사로부터 김모 양이 처녀막에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4월 8일 한국 경찰병원의 진단 결과 또한 “처녀막에 전혀 손상이 없고, 어떠한 형태로도 성폭행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정액검사 결과 역시 음성반응이었다.
그러나 4월10일 고소인 중 김모 양은 다시금 경찰병원에서 진료를 받았고, 처음과 달리 미세한 열상이 있는 것으로 진단됐다. 이 열상은 고소인이 주장하는 심각한 파열상이 아니라 “자전거 타기로도 발생할 수 있는 상처” 라고 당시 진료담당 의사는 진술했다. 이 열상은 범죄수사를 위한 정상적인 경찰병원의 진료절차와 달리 환부에 대한 사진촬영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고소인들은 4월18일 기자회견에서 “심한 성폭행을 당해 걷기가 힘들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어 하혈을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사건 현장에서 있었던 당시 CCTV 판독 결과 이 두 여성은 미소를 짓고 있었으며 걸음걸이 또한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피고인의 변호인은 이런 여러 정황상 고소인이 자해를 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07년 5월 중국 공안에게 부녀자 성폭행 혐의로 체포됐다고 알려진 정 총재가 2008년 2월 무사히 한국에 송환된 것도 미심쩍은 대목이다. 중국에서 강간범은 마약범과 대등하게 취급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엄히 처벌한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 수사기관에서 정 총재가 강간범이라는 혐의가 있었다면 순순히 한국으로 보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정 총재에 대한 판결에서 핵심적인 쟁점이던 중국에서의 수사 자료는 아쉽게도 한국법정에 제출되지 못한 채 종결됐다.
▲ 정명석 총재가 각처에서 모여든 수많은 군중 속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설교하고 있다.
주동행
정명석
청천벼락을
맞았는데도
나에게
한가닥
실과같은
길이있다
그길로
나를
구한주님
가면서
이길만도
충분하다
자가용도
자전거도
타고가지
않았는데
넓은길이
필요있냐
너와나만
가면
되지않냐
다른사람
이길
올수없고
마음조차
생각지도
아니한다
가다보면
소롯길이
나올게다
그러다가
넓은길이
나오면은
기다리는자
모두만나
어떻게나
오셨냐고
표적이다
하리로다
예술가의 작품에는 그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정 총재가 옥중에서 쓴 시들은 고통과 인내의 연단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인생 심연의 진리를 드러내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정명석 총재는 1989년 시집<영감의 시>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후, 1995년 문예사조를 통해 등단해 한국 시문학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작년 3월 발간된 <한국 시 대사전>에는 한국 時史 100년(1908~2010년>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정 총재의 시 10편이 수록됐다.
입으로 할 수 없다면 손이 닳도록 글로써 복음을 전하겠다는 정 총재의 집필활동은 옥중에서도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4년 9개월 간 옥중에서 기록한 정 총재의 설교와 묵상, 시는 수천 편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