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동네

찍찍찍by 날개단약속

20191022김혀영찍찍찍.jpg









몇 주째 재활용 쓰레기 하나가 계속 집 앞에 있었다.
청소부의 반품이라는 글씨와 함께.
아침에 윗집 할머니는 냄새난다고 대체 누가 버렸냐며 역정을 내셨다.
나도 개념 없는 사람 같다며 같이 맞장구를 쳤다.
그래도 여전히 가져가는 사람이 없었다.


늦은 오후가 되도록 쓰레기 봉지는 계속 있었다.
정말 누가 버렸길래 저렇게 뻔뻔한가 싶어 봉지 안을 이리저리 살피는데 익숙한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우리 집 쓰레기잖아.’
나는 누가 볼까 부끄러워 얼른 집 안으로 들였다.

“어, 그거 재활용 안 되는 거였어?” 알고 보니 범인은 신랑이었다.
한 번만 더 이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신호로 나는 눈을 잔뜩 흘기며 입을 삐죽거렸다.


밖에 오래 있었던 탓일까.
쓰레기 봉지는 여기저기 뜯겨 있었다.
신랑의 흔적을 다 빼고 재활용되는 것으로 넣고는 테이프로 넘치지 않게 대충 여기저기 붙였다.
내일이 재활용 요일이라 미리 버릴 수 없어 부엌 뒤 베란다에 임시로 두었다.

 
“찍찍찍...”
“이게 무슨 소리지?”
어젯밤부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배란다 쪽을 향해 문을 여니 다시 조용하다.
그러다 다시 “찍찍찍...”
다시 문을 여니 조용했다.


혹시나 해서 부엌에 난 작은 문을 소리 없이 열고
배란다 쪽을 슬쩍 살피니, 오 마이 갓! 쥐?
봉지 위에 쥐 한 마리가 고개를 살짝 들더니 여기저기 살핀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다시 봉지 안으로 쏙 들어간다.


아니 내가 지금 꿈을 꾸나?
80년대도 아니고 우리 집에 쥐가?
이성을 상실한 나는 베란다 문을 벌컥 열고는 봉지에 구멍이란 구멍은 죄다 테이프로 막고
막대기로 마구 봉지를 때렸다.


슥삭삭...
쥐가 봉지 안에서 기어 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안 되겠다 싶어서 봉지를 들고 급하게 원래 위치에 놓았다.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듯 집으로 들어왔다. 


“찍찍찍...”
배란다 쪽에서 희미하게 소리가 난다.
‘뭐야? 분명 쓰레기 안에 있었는데?’
‘이놈이 우리 집 근처를 돌아다니나?’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다. 아니 물증을 잡을 수가 없다.


우리 집 베란다가 방과 부엌이 붙어있어서 좁고 길다. 창고 같은 곳이라 잡다한 것도 많다.
10년 치 아이들 장난감과 선풍기 몇 대, 휴지, 먼지 쌓인 다량의 책들...
택배 상자도 필요하다며 여러 개 쌓아놓고 있었다.
그래서 창고 관리에 손 놓은 지 오래. 도무지 들어갈 틈이 없다.
저러니 쥐들이 활개를 치지….


그때 쥐 끈끈이가 생각났다.
약국에서 급하게 사 와 끈끈이 2~3개를 통로 입구에 두었다.


다음날 보니 세상에...
새끼 쥐가 두 마리 걸려있었다.
게다가 꽤 긴 털이 몸부림치다가 탈출한 모양새로 붙어있었다.
‘아, 어미 쥐가 따로 있었구나. 우리가 버린 건 아빠 쥐였구나.’

쥐 끈끈이로는 도무지 약했다.
우린 대대적인 쥐 소탕 작전에 돌입했다. 몇 마리인지 알 수가 없으니 빨리 한 방에 다 잡아야 했다.
쥐의 번식력은 한 달이면 성인, 3주면 6-10마리 출산...
쓸데없이 일주일이나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너무 없었다.


인터넷으로 쥐를 잡을 수 있는 모든 물건을 구매했다.
베란다에 빈틈이 있는 곳마다 소시지 꽂은 쥐덫을 놓았다.
쥐가 모일만한 장소마다 과자와 쥐약을 섞어 놓았다.
그리고 때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며칠 뒤 쥐의 비명이 들려 베란다로 가보니 쥐덫에 상당히 큰 쥐가 잡혀 있었고
새끼 쥐 몇 마리는 끈끈이에, 몇 마리는 쥐약에 뻗어 있었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어 며칠을 더 기다렸다. 더 찍찍찍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드디어 소탕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한동안 트라우마로 베란다 문을 3초 이상 열지 못했다.
어딘가에 꼭 숨어있을 것만 같아서.


이 상태로는 안심이 되지 않아 우리는 대대적인 베란다 엎기에 들어갔다.
혹시 쥐에 물릴까 완전무장을 하고 베란다에 들어섰다.

쥐똥 냄새와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안보는 책은 전부 버리고, 장난감 절반은 재활용으로 넘겼다.
팔 것은 팔고,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할 것은 정리했다.
베란다의 짐이 2/3가 없어졌다.
이후 쥐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바닥과 벽을 빡빡 닦았다.
쥐는 더 이상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없었다.
내 눈으로 확인하니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확인하지 않고 가져온 쓰레기봉투 때문에 쓸데없는 고생 한다고 자신을 그토록 탓했었는데,
어찌 되었든 쥐도 소탕하고, 베란다도 깨끗해지니 마음의 짐이 가뿐해졌다.
아, 이제야 두 발 뻗고 자겠네.


그런데... 이 찝찝함은 뭘까?
설마...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빅픽쳐?
내가 게을러서?
확인하며 살라고?
그런가? 아닌가?
아, 모르겠다. 


어쨌든 잘 됐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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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5/10/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