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첫째와 아차산 정상 등반을 약속한 날이다. 1시에 하교하면 놀러가자고 노래를 부르는 터라
마음먹고 산행을 결심했다.
사실 아차산은 나와 무척 친한 산이다. 10살부터 혼자 아차산에 놀러 다니기 시작했으니
근 30년 가까이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차산 정상은 한 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다.
아차산에 정상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몇 년 안 되었다. 그 전까지는 2-30분쯤 산을 타면 나타나는
봉우리 위에 고구려정(팔각정)이 아차산 정상인 줄 알았다. 주변에 다른 산봉우리도 있지만 그냥 다른
산인가 했다. 그렇게 30년 가까이 산 정상과 전혀 상관없는 곳만 백번 넘게 다녀가며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고 한 것이었다.
‘산 정상이 생각보다 가깝네. 이게 무슨 산이야. 높은 언덕이지.’ 아차산을 타면 늘 그런 생각이었다.
고구려정까지 오르막길이 겨우 700미터. 산으로 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팔각정에 오르면 더 가지 않고
바로 내려와 버렸다. 더 올라갈 생각조차 안 했다. 모르면 손해다.
오르막길을 올라 고구려정에 도착했다. 한숨을 돌리고 다시 해맞이 광장을 향해 기암절벽을 올랐다.
다 오르니 앞으로는 서울시내, 뒤로는 경기도 구리와 하남시가 한 눈에 보였다.
새해 해맞이 장소로도 유명하다.
해맞이 광장을 지나니 아차산 1보루가 보였다. 보루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돌 등으로 튼튼하게 쌓은
구축물이다. 근처에 거리 표지판이 있어서 살펴보니 정상까지 아직 절반도 안 왔단다.
‘아니 뭔가 많이 지나온 것 같은데 절반도 안 왔어? 기암절벽을 2-3개는 오른 것 같은데... 휴.’
이제 1보루다. 아차산은 6보루까지 있다. 순서대로 가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다 지나서 4보루까지
가야 한다. 거기가 아차산 정상이다.
‘또 오르막길의 반복이겠구나.’
한숨을 쉬며 1보루를 지나는데 길의 느낌이 아까와는 많이 달랐다. 무작정 올라가야했던 앞길과는 달리
이 길은 나지막한 길 위로 확 트인 하늘이 있었고, 우측으로는 한강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좌측으로는
서울 시내의 빌딩들이 빼곡히 보였다.
아, 능선이구나.
산 능선은 정말 재미도 있고 신기한 길이었다. 천천히 걸으며 좌우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여유,
그러면서도 정상으로 향해 가는 속도가 정말 빨랐다. 마치 여유 속에 축지법을 쓰는 느낌?
‘이래서 능선을 타라고 하는 거구나.’
무슨 일을 하든 어느 수준까지 올라야 그 다음부터는 능선을 타며 정상까지 수월하게 갈 수 있는 것 같다.
능선 타는 맛이 얼마나 좋았으면 아들과 6개의 보루를 지나면서 산 정상을 지나칠 뻔 했다.
다른 산 능선까지 탈 뻔했다. 갑자기 내려가는 길이 나오기에 어, 정상가는 길인데 왜 내리막길이 나오지 했다가 주변을 살피니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역시 정상은 정상이었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트여 360도로 모든 지역의 풍경이 입체적으로 보이니
능선의 감동은 비할 바가 아니었다. 풍경에 놀라워하고 있을 때, 모자가 여기까지 산행 온 것이
감동된다면서 사진작가 아저씨가 한 컷 찍어주었다.
산을 오르면 산의 마음을 담아 오는 것 같다.
내가 아닌 듯 넉넉한 마음을 선물 받고 오는 기분이다.
산 오르기 좋은 요즘, 가까운 사람과 산행이라도 다녀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