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_설교말씀

주님께 합당한 사람

본문 .

[본 문]

마태복음 10 : 37 - 39


 

할렐루야!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마태복음 10장 37절에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자기 부모나, 형제나, 애인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나보다 그들을 더 사랑하면 합당치 않다.” 하셨습니다.


얼핏 들으면 이는 도덕에 벗어난 말이 아니냐고 하며 이해할 수 없는 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같이 말씀하셨는지 그 의미를 완전히 알도록 말씀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치 않으셨으면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체 중의 한 존재자이신 성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는데, 예수님께서 인생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이끌지 않으면 천국에 갈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먼저 사람 입장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물에 떠내려가 곧 죽게 될 사람을 구조대원이 건지려고 밧줄을 던지며 말하기를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너를 끌어내어 살릴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말보다 내 말을 더 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물에 빠진 사람이 자기가 아는 사람들과 자기 애인과 부모의 말을 더 중심하며 구조대원의 말을 듣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구조대원이 구출하기에 합당치 않습니다.


한 가정에 병들어 있는 사람이 있기에 부모 형제들이 병원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진찰하고 검사해 보니 급히 수술을 해야 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의사가 수술하자고 하니 그는 부모 형제와 애인에게 물어보고 한다고 했습니다. 자기 부모 형제와 애인에게 물어보니 수술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밥 잘 먹고 기분 좋으면 나을 수 있는데 왜 수술하느냐고 말하는 부모 형제와 애인의 말을 듣고 의사의 말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 후 석 달도 못 가서 그 사람이 죽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의 부모 형제와 애인은 의사의 말을 듣지 않고 우리 말을 더 들었기에 죽었다고 하며 후회했습니다.


이와 같이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말씀보다 부모와 형제와 애인의 말을 더 중심하거나, 더 사랑하면 ‘구원’에 합당하지 못하고, ‘주님의 참사랑’에 합당하지 못하여 구원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기를 창조하신 전능자 하나님과 자기를 영원히 구원하시는 메시아 예수님을 부모, 형제자매, 애인보다 더 사랑하지 않으면 합당치 못함을 바로 배우고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 부모와 형제와 애인보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더 사랑해 주며, 죽음에서 구원해 주고, 어려움에서 도와주고, 관리해 주셨는데 그들보다 예수님을 뒤에 두고 대하고 사랑한다면 예수님께 합당치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최고로 사랑하면 예수님께서 각자의 개성대로 세상에서도 잘되게 해 주시고, 그 영혼을 구원하시어 영원히 멸망하지 않게 해 주시고, 그 부모 형제와 애인도 더 좋게 대해 주십니다. 믿습니까?


전능자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 가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나면, 감히 부모와 형제와 자기 사랑하는 자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이는 자기 부모 형제나 자기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얼마나 사랑해 주시는지, 그 큰 사랑을 깨닫고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보다 누구든지 더 사랑하면 왜 합당치 못한지 이제 깨달았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38절에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메시아 예수님이 지고 끝난 것인데 왜 사람마다 십자가를 져야 하나?’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십자가는 무엇인가?’에 대해 듣기 전에,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첫째, 구원의 십자가였습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을 기다렸던 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임을 알지 못하여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하나님께 이들이 모르고 이같이 하니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눅 23:34)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죽음을 대신하여 온 인류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들의 입장은 저주의 십자가였지만, 예수님의 입장은 구원의 십자가였습니다.


둘째, 희생과 죽음의 십자가였습니다.


셋째, 사랑의 십자가였습니다.


만민을 사랑하였기에 만민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져 주시고 메시아로서, 의인으로서 죄인을 대신하여 대신 죽어 주신 것입니다.


넷째, 고통과 몸부림의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차마 인간으로서 볼 수 없는 처참한 고통을 받으면서, 죄인을 위해 수백 가지로 고통을 받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이는 자신이 예수님처럼 메시아가 되어 그같이 사랑하며 십자가의 가혹한 고통을 받아 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다섯째, 영광의 십자가였습니다.


멸망을 받고 지옥에 갈 죄인들을 구하여 영광스럽게 해 주었으니 영광의 십자가였습니다. 결국 예수님께도 영광, 구원 받을 인류에게도 영광이었습니다.


여섯째, 부활의 십자가였습니다.


죄인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역사를 한 것이므로 결국 주님도 부활의 몸이 되셨고, 주님을 믿는 모든 자들도 부활의 역사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일곱째, 승리의 십자가였습니다.


사탄 마귀와 악한 자들을 의로 싸워 멸하시고 이긴 승리의 십자가였습니다.


여덟째, 메시아로서 인류를 향한 구원의 책임을 다하신 십자가였습니다.


찬송가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놓고 ‘고난의 십자가’라고도 노래를 부르고, ‘영광의 십자가’라고도 노래를 불러 혼돈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장단점을 가지고 가사를 지어 찬양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주님은 만민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십자가는 예수님과는 비교가 안되는 작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고통과 환난, 배고픔과 힘든 일이 있어도, 억울함을 당해도, 손해를 보아도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피하지 말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모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그 뜻을 생각하며 자기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형제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정과 각 사명지에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됩니다. 그로 인하여 더 좋은 삶과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십자가는 고통과 억울함과 아픔만은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고 난 후에는 그에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옵니다. 자기 위치에서 지는 십자가만 지지 말고 자기가 져야 하는 십자가를 모두 다 져야 모두 희망이고 잘되고 평안하고 영광이 됩니다. 서로 희생하지 않고, 참고 견디지 않고, 사랑의 십자가를 지지 않으니 불안하고, 서로 화평하지 않고, 불만이고, 싸우고, 우는 것입니다.


편하게 살려고 하는 자에게는 더 고통이 오고, 살려고 하는 자 더 죽게 되고 고통을 받게 됩니다.(마 10:39) 얻으려고만 하면 더 잃게 됩니다. 자꾸 주님께 드리고 맡겨야 더 얻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주님만 쳐다보고 사랑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이런 자가 좁은 길, 생명길, 천국길로 가는 자이며 주님의 신부로서 주님의 재림을 앞에 두고 예비하며 사는 자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오는 자만이 예수님께 합당한 자입니다. 그래야 인생 영원한 승리를 하고, 사탄을 물리치고, 영과 육의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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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5/7/2010 22:2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