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濟漫步 by 智囊袋

與RGO 24的記者「智囊袋」一起探索的「經濟漫步」…夢想自己是一本經濟真人書(living book), 記者想要藉此見證透過經濟來動工的 神的攝理歷史。不妨與主一同行走在既美麗又神袐的天國經濟步道上吧!

칼럼_연재칼럼_經濟漫步

소의 종교적 상징을 통해 본 영육 새롭게

2021년은 신축년(辛丑年), 소의 해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소’에서 우직하고 충성스러운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그것은 소가 힘은 센데 사납지 않고 성실하며 끈질긴 면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띠로 태어난 사람들도 소처럼 근면하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통적으로 농경사회이다 보니 이러한 소의 성격이 더욱 부각된 면도 있습니다. 농경사회에서 소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노동력이자 운송수단이었고, 급한 일이 생겼을 때는 목돈을 마련할 비상 금고로서의 역할까지 했기 때문에 소는 가축의 의미를 뛰어넘는 아주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이렇게 농사와 결부되어 있는 소가 조선시대에는 풍년을 기원하는 농신제의 제물로 바쳐지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전쟁이 있을 경우 소를 잡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그 발굽으로 길흉을 점치기도 했습니다. 발굽이 갈라지면 흉하고 합해지면 길하다고 생각한 것이죠. 이렇게 소는 농업의 핵심 생산요소에서 종교적 상징성을 띠는 동물로 변해갔습니다.



민간 무속신앙에서는 소가 귀신을 쫓는다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경기도에서는 소의 고삐를 집안에 매달아 두는 것이 귀신을 막는 부적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믿었고, 전라도 진도에서는 마을 입구에서 액운을 막고 전염병을 물리치기 위한 장승제를 지낸 후 소의 턱뼈를 장승에 걸어두면 잡귀를 물리친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유교에서는 소가 ‘의’를 상징한다고 보았습니다. <삼강행실도>를 보면, 호랑이와 싸운 후 주인을 구하고 죽은 소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소가 사람의 진면목을 상징한다고 여깁니다. 불교의 <심우도>라는 그림을 보면, 소를 찾아가는 선 수행의 과정을 10단계로 나누어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편, 도교에서 소는 유유자적을 상징합니다. 소의 느긋한 정신이 도교의 정신과 들어맞기 때문입니다. 즉, 소를 타고 세상을 등지는 이미지인 것이죠.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소를 신성한 동물로 여기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인도’입니다.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인도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길에서 소를 피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소가 지나가면 소의 이마에 손을 댄 후 그 손을 자신의 이마에 갖다 대기도 합니다. 사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이마를 쓰다듬을 수는 있지만,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이마를 쓰다듬는 것은 버릇없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인도인은 소의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동급으로 취급합니다.



그런데 인도가 이렇게 소를 숭배하게 된 것도 사실 경제적인 이유에서입니다. 인도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농경사회였습니다. 인도인들에게 있어 소가 생산하는 우유는 아주 중요한 식재료였습니다. 우유로 만든 버터, 치즈는 인도 커리의 중요한 식재료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도인들은 소의 똥을 말려 땔감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가을에 소의 똥을 얇게 펴서 볕에 말리면 겨울철에 훌륭한 땔감이 되었기에 인도의 아낙네들은 소의 똥을 모으는 것이 하나의 일과였습니다.



이 때문에 인도의 초대 수상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는 “인도인이 소를 잡아먹었다면 몇십 년은 배부르게 살았을지 모르나, 대신 현재의 인도는 지도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인도인들은 이러한 경제적인 이유를 종교적 교리로 승화시켰을까요? 그것은 과거 지배층들이 인도 사회를 지속시키기 위해 소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교육을 받지 않은 다수의 대중에게 이를 이해시키기가 무척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택한 것이 종교적 교리였습니다. 즉, 대중을 이해시키기 위해 ‘암소는 신이며, 소를 잡아먹는 것은 신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선언해버리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었던 것이죠.



더 나아가 인도의 힌두교는 암소를 신성시하는 것이 윤회설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하기까지 합니다. 힌두인들은 악마에서부터 소에 이르는 86번의 윤회를 거친 후 한 번 더 윤회하면 인간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암소를 죽인 사람의 영혼은 가장 낮은 단계로 미끄러져 이 모든 과정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니 소를 잡아먹는 것은 큰 일날 일이죠. 심지어 인도의 맥도날드는 소고기 패티조차 사용하지 않습니다.


인도에서의 소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도 알고 보면 무더운 중동에서 돼지고기의 부패로 인한 위생상의 문제였습니다. 사실 중동 지역의 기후와 생태계는 돼지 사육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돼지는 37도 이상의 직사광선 아래서는 살 수 없는데 중동의 한낮 기온은 40도가 넘습니다. 또 숲이 없는 평원과 구릉지로 이루어진 중동 지방의 지형은 강우를 이용한 농업을 영위하기에는 비가 너무 적고, 관개농업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소, 양, 염소처럼 섬유질이 많은 풀을 먹고 되새김질을 하는 반추동물을 기르는 것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반면 돼지는 숲이나 그늘진 강둑에 살며 주로 나무열매, 과일, 식물 뿌리, 곡식 등 섬유질이 적은 식물을 먹는 동물입니다. 또한 돼지는 먼 거리를 몰고 다니기도 어렵고, 젖을 이용할 수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돼지고기가 맛이 좋다고 해도 식용으로 사용할 만큼 사육하기에는 생태학적으로 부적합했습니다. 즉, 돼지고기를 먹을 때의 편익보다 돼지 사육에 드는 비용이 훨씬 컸던 것이죠. 하지만 지배층은 이러한 생태학적, 경제적 이유를 뒤로 한 채 돼지고기가 신에 의해 저주받은 부정한 음식이라고 이해시켰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오늘날 알래스카에 사는 무슬림도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중동의 무슬림인들이야 더운 기후 때문이라는 것이 이해가 가지만, 알래스카와 같이 돼지고기의 부패를 걱정할 이유가 없는 지역에 사는 무슬림들도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보면, 그들에게 있어 돼지고기를 먹으면 안된다는 종교적 교리가 이제는 바꿀 수 없는 하나의 강력한 도그마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들은 우리들에게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발전과 함께 기존에 우리가 알던 지식이 다른 이야기로 바뀔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존의 관념과 생각에 갇혀 우리의 생각과 사고를 업데이트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영육 새롭게’라는 말씀이 더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하나님은 매 시대마다 중심인물을 통해 항상 새롭게 역사를 진행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진행되어 온 새로운 역사를 믿고 따른 자들은 새롭게 변화되어 희망의 역사를 맞을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고 기존의 생각에 갇혀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하지 못한 이들은 여전히 과거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정명석 목사님은 마음도 육도 영도 새롭게 하여 더 좋은 방법, 더 나은 방법으로 살아야 더 이상적으로 살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역사를 펴고 계시건만, 자신의 생각과 기존의 교리에 갇혀 그 근본을 바라보지 못하는 이들을 보면 종교적 도그마에 갇혀 소고기를 먹지 않는 힌두인들이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인들과 비슷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소의 해를 맞아 소의 종교적 상징성이 영육을 새롭게 하라는 화두를 다시 한 번 던지는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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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7/1/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