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濟漫步 by 智囊袋

與RGO 24的記者「智囊袋」一起探索的「經濟漫步」…夢想自己是一本經濟真人書(living book), 記者想要藉此見證透過經濟來動工的 神的攝理歷史。不妨與主一同行走在既美麗又神袐的天國經濟步道上吧!

칼럼_연재칼럼_經濟漫步

지혜는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여우 한 마리가 험한 산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산이 험하다 보니 돌멩이에 부딪히고 가시에 찔려 여우의 발은 항상 성할 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우는 인간들이 도로를 포장하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여우는 깜짝 놀랐다. 돌과 자갈이 깔린 길 위에 아스팔트를 입히자 그 길이 감쪽같이 반들거리며 평평한 길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자 여우는 “그래, 바로 이거야!” 하면서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야심찬 계획을 세운다. 그것은 토끼를 잡아서 토끼의 털로 자신이 다니는 산길을 덮는 것이었다.



그 계획에 따라 여우는 토끼 한 마리를 잡았다. 그런데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토끼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 어르신이 산길을 편히 걸어 다니기 위해서는 너희가 희생할 수밖에 없구나. 너희의 가죽을 모두 벗겨 너희의 털로 이 산길을 평평하게 만들 계획이다.” 그러자 토끼가 말했다. “아니, 어르신! 이 산에 있는 토끼를 모두 다 잡는다고 해도 가죽 길을 만들기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저의 꼬리를 잘라서 어르신의 발에 맞는 가죽신을 만들어 신으신다면 산길이 토끼 가죽 길이나 다름없을 텐데, 왜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십니까?”



이 이야기에서 여우는 무척이나 어리석어 보이고 토끼는 굉장히 지혜로워 보인다. 이처럼 어리석음의 반대가 되는 말이 바로 지혜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여우와 토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인생의 수많은 상황에서도 여우와 같은 어리석은 판단을 저지르고, 또 잘못된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로 인해 많은 손해를 보기도 한다. 그래서 과거부터 수많은 이들이 지혜를 구해왔다. 철학을 뜻하는 영어 단어 ‘philosophy’만 보더라도 사랑을 의미하는 ‘필리아(philia)’와 지혜를 뜻하는 ‘소피아(sophia)’가 결합되어 만들어졌다. 철학은 근본적으로 ‘지혜에 대한 사랑’을 추구하는 학문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철학자들과 같이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며 지혜를 구하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한 데 모아 지혜를 찾기도 한다. ‘셋이 모이면 문수보살의 지혜가 나온다’라는 옛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아이디어를 내면 예상치 못한 아이디어와 지혜가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나만의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면 나만의 공간 속에 갇혀 버리지만 남의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면 나의 공간이 남의 공간까지 확장되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원리다.


또한 지혜는 ‘DIKW(Data-Information-Knowledge-Wisdom) 피라미드’라는 단계를 통해 발현되기도 한다. 가장 아랫단의 자료(data)는 개별 데이터 자체로서, 다른 자료와의 상관관계나 의미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객관적 사실만을 의미한다. 이 데이터를 가공하고 거기에서 어떤 상관관계를 파악해 그 패턴을 인식하고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그것은 정보(information)가 된다. 그리고 이렇게 상호 연결된 정보의 패턴을 이해하여 체계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면 그것은 지식(knowledge)이 된다. 그리고 지혜(wisdom)란 어떤 상황이나 지식에 대한 근본 원리를 깊이 이해할 때 발현되는 창의적인 단계로서, 이 단계에서는 정확한 방향으로 상황을 판단할 수 있고, 또 새로운 시사점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사람마다 지혜를 얻는 방법이 다양하고, 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를 수 있기에 정명석 목사님도 지혜에 대한 정의와 지혜를 얻는 방법에 대해 수십 가지로 말씀하신다. “지혜는 판단이다. 제대로 아는 것이 지혜다. 자기의 무지를 깨닫는 것이 지혜다. 파악하고 확인하는 것이 지혜다. 묻고 행하는 것이 지혜다. 안될 때는 방법을 달리하는 것이 지혜다. 찾는 것이 지혜다. 끝까지 하는 것이 지혜다. 매일 관리하는 것이 지혜다.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 지혜다. 모르면 아는 자를 따라하는 것이 지혜다. 한 가지만 보지 말고 여러 가지를 보고 행하는 것이 지혜다. 미리 예비하고 방지하는 것이 지혜다.” 등등.


그러면서 모든 지혜의 근본자가 하나님, 성령님, 성자임을 절대적으로 밝히신다. “자기 죄가 있으면 천국에 가지 못가니 깨끗이 회개하는 것이 지혜, 많이 얻고 거두려면 삼위께 많이 감사하고 기뻐하고 기도하고 대화하는 것이 지혜, 주를 절대 알았으면 주를 시인하고 말씀을 귀히 여기고 형제를 사랑하며 사는 것이 지혜, 성삼위가 창조하신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사는 것이 지혜, 삼위일체와 주를 절대 흔들림 없이 사랑하는 것이 지혜,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정말 귀히 여기는 것이 지혜,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함께 늘 얘기하는 것이 지혜,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이 지혜, 주의 말씀을 자기 생각보다 더 크게 여기고 행하는 것이 지혜, 하나님과 성령님의 구상대로 행하는 것이 지혜”라는 말씀을 통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신다.



그런데 이렇게 끝없이 전해주시는 지혜에 대한 말씀은 항상 성삼위를 경외하며 성삼위와 함께 하는 삶이 아니고서는 나올 수가 없다. 지혜의 근본자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이다. 그만큼 목사님은 지혜를 얻기 위해 성삼위를 절대적으로 사랑하며 끝없는 기도와 다양한 경험을 하신 것이다. 성경에서 솔로몬은 지혜를 얻기 위해 삼천번제를 드렸다. 북유럽 신화에서 지혜의 신 오딘(Odin)은 지혜를 얻기 위해 한 쪽 눈을 바쳐야만 했다. ‘나이가 곧 지혜(Older and Wiser, Years bring wisdom)’이라는 서양의 속담과 같이 많은 시간이 걸린 후에야 지혜가 얻어지기도 한다. 이처럼 지혜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명석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기도 하지만 본인 스스로가 자꾸 연구하고 몸부림치며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시며, 그것이 지혜라고 말씀하셨다. 성삼위를 근본 삼아 지혜를 얻기 위한 삶의 자세를 다시 한 번 가다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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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12/4/2020